그저 난해하고 불쾌하기만.
19.03.13. @CGV평촌
나름 오랜만에 신작 관람에 나선 오늘의 첫 영화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신작 <그때 그들>을 관람하였다. 157분이라는 러닝타임과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후기 탓에 선뜻 보기가 두려워 관람을 미루기도 했던 이 영화는, 간단히 말해 그 어떤 의미에서든 상영관에 앉아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스크린을 보고 있는 것조차 너무 힘겹고 버겁게만 느껴진 작품이었다.
각각 1시간 40분 가량의 러닝타임으로 1부와 2부가 나뉘어진 두 편의 <Loro>를 157분 가량으로 압축한 이 영화는 전반부엔 거대한 성공을 꿈꾸는 연예 기획자 세르조 모라의 이야기가, 후반부엔 그가 명예를 얻기 위해 반드시 눈길을 끌어야 하는 이탈리아의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베를루스코니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실존 인물과 이름이 겹치는 것은 모두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오프닝 자막이 예사롭지 않은 블랙 코미디일 것이란 기대를 하게 만든 영화는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혼란을 안겨준다.
이전에 관람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작품 중 최근작인 <유스>는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면 2013년작 <그레이트 뷰티>는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는데, 이 영화 <그때 그들>의 난해함은 <그레이트 뷰티>의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악의 막장 정치가로 불린 베를루스코니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유쾌하면서도 신랄한 블랙 코미디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영화의 분위기는 때때로 지나치게 난해하고 때로는 괴기하게까지 느껴진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15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정말이지 무척이나 버겁게 느껴진다는 점인데,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연예 기획자 세르조의 이야기를 그린 초반부가 꼭 그렇게 길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하며 성공을 맛보기 위해 세르조나 베를루스코니의 눈에 띄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여성들의 몸부림은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느껴져 피로도를 높여줄 뿐이다.
또한 분명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에 대한 반감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처럼은 보이나, 영화에서 그를 다루는 방식 역시 다소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언론을 장악하고 온갖 망언을 일삼고 미성년자들과도 광란의 섹스 파티를 즐기는 등 그야말로 추잡함의 끝을 달리는 인물을 묘사하면서도 때때로 영화는 그가 그런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처럼 읽힌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를 마냥 비하의 대상으로 그릴 의도는 없었는지 몰라도 단순히 중립을 지키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보다는 그저 모호하기만 하다.
한편 그럼에도 영화 내내 돋보이는 장점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레이트 뷰티>나 <유스>와 마찬가지로 때때로 극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넘어 아름답고 우아한 영상 예술을 제대로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영상미는 눈을 사로잡으며, 촬영과 편집 등의 요소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베를루스코니로 분한 토니 세르빌로 배우의 연기인데, 다소 루즈한 분위기에 지쳐있을 때쯤 등장해 놀라운 표정 모사와 연기로 단숨에 시선을 잡아끄는 그의 활약만큼은 무척 매력적이다.
어쩌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혹은 약 40분 가량이 생략된 압축판으로 관람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그저 힘들고 괴로웠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그 때문이라고 한들 차마 언젠가라도 다시 이 작품과 마주할 엄두는 내지 못할 것만 같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연출작 중 세 편을 관람한 상황에서 <유스>를 통해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그의 영화 세계와 다시 몇 걸음은 멀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