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미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by 뭅스타

19.03.14. @CGV평촌


흥행 면에서 큰 수익을 얻을 만한 작품은 없어도 보고 싶은 영화는 꽤 많은 금주 개봉작 중 <이스케이프 룸>에 이은 두번째 영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 <라스트 미션>을 관람하였다. (당장 지난 해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가 처참한 혹평을 얻기는 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이름만으로도 봐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이 영화는 노장의 뒤늦은 반성과 처연한 퇴장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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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가족보다도 원예 농장을 운영하는 일을 우선시하며 살아온 노인 얼이 사업이 실패한 후 운전만 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마약 운반책 활동을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그려나간다. 무너진 것들을 하나 하나 되돌리기 위해 마약 운반책 일을 이어가던 그는 뒤늦게 가족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지만 오랫동안 깊어진 감정의 골은 쉽게 극복되지 않고 그런 상황에서 서서히 수사망을 좁혀오는 마약단속반의 추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랜 토리노> 이후 10년 만에 연출은 물론 주연까지 겸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은 범죄에 가담하는 노장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지난 해 말 개봉한 <미스터 스마일>을 떠올리게도 한다. 물론 <미스터 스마일>의 주인공 포레스트가 어린 시절부터 은행 강도 일을 이어온 것과 달리 이 영화의 얼은 얼떨결에 마약 운반책이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두 영화 모두 범죄에 뛰어든 노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영화의 분위기나 여운은 비슷한 느낌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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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운반책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에게 임무를 주는 마약 조직과 그들을 잡고자 하는 마약 단속반까지 등장하지만 영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개봉한 마약 소재의 영화들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펼쳐진다. 범죄를 소재로 하면서도 이를 통해 긴장감을 자아내기 보다는, 범죄에 가담하게 된 노장의 뒤늦은 깨달음과 반성을 중심으로 내내 잔잔하고 차분하게 흘러간다. 그 사이에 조금씩 스며들어있는 유머와 신사적인 성격의 얼이 입담을 떨치는 장면들은 자칫 잔잔함을 넘어 루즈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는 영화 중간중간에 활력을 더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얼은 인생을 즐길대로 다 즐긴 후에 뒤늦게 가정에 소홀했음을 깨닫는, 조금은 무책임한 가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영화 속 인물이 아닌 실제 나의 가족이었다면 과연 그를 받아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얼이라는 인물 자체가 마냥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이기에 늦은 나이에나마 비로소 무엇이 소중한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은 제법 처연하고 쓸쓸한 여운을 안겨준다. 무엇이 우선인지 미처 몰랐던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반성을 똑같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듯이 얼이 그가 만나는 이들에게 투박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충고를 전하는 과정은 소소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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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반부 이후에 접어들면서 영화의 전개가 이전까지에 비해 다소 느릿하게 펼쳐지면서 조금은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감독이 보여준 그동안의 작품 세계에 비해서는 다소 아쉽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는 이 영화를 뛰어난 걸작으로 만들고 싶었다기 보다는 90세에 다다른 노장으로서 진심으로 다음 세대들을 위한 충고를 전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에 무엇이 제일 중요한 것인지를 몰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듯한 그의 충고는 얼이라는 캐릭터를 그가 직접 연기함으로써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고, 비록 마냥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의 전작들만큼 깊이있게 다가온다.

한마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명성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웠을지라도 그 명성을 여전히 빛나게 해주기엔 충분한 영화였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저 눈에 띌 정도로 노쇠하고 나약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노장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일게 만든 영화였다고, 그리고 어쩌면 욕심일지 몰라도 그가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하게 되는 영화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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