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되고 이해가서 더욱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19.03.16. @CGV압구정
개봉작이 쏟아진 금주의 영화들 중 가장 기대가 컸던 그 영화 <아사코>를 관람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다양한 기획전에서 상영됐을 때부터 큰 호기심을 불러모았던 이 영화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독특하고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내려가고 싶어지는, 무척 기분 좋으면서도 매력적인 기분을 안겨준 작품이었달까.
영화는 오프닝부터 무척이나 빠른 전개로 당황스러운 충격을 안겨준다. 전시회를 관람하던 아사코는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바쿠에게 이상한 끌림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짧은 통성명과 인사를 나눈 이들은 만난 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키스를 나눈다. 이 이상한 만남을 계기로 아사코와 바쿠는 이내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아사코가 진심을 다해 사랑한 바쿠가 어느 날 연락도 없이 사라져버리며 그들의 사랑은 끝나고 만다.
남자 주인공처럼 보이던 바쿠가 초반부에 종적을 감추는 것만으로도 당황스럽게 느껴지던 영화는 이내 그와 똑 닮은 또다른 남자 료헤이가 아사코 앞에 나타나며 아사코도, 관객들도 혼란에 빠뜨린다. 잊고 싶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료헤이를 애써 피하던 아사코는 결국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에게 마음을 주게 되고 그렇게 아사코의 두번째 사랑이 펼쳐진다.
왠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포스터를 보며 짐짓 예상하기는 했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로맨스 장르의 틀 안에서 움직이면서도 로맨스 영화를 볼 때 쉽게 예측하는 클리셰는 사실 상 모두 깨버린다. 빠른 전개로 밀어붙이는 초반부부터 똑같은 외모의 두 남자와 사랑한다는 설정, 그리고 이후 아사코가 행동으로 옮기는 몇몇 결정들까지 가히 모든 것들이 신선함을 넘어 때때로 당황스럽게 펼쳐지기도 하는 영화는 여느 로맨스 장르물과 다른 스토리를 서정적인 분위기와 기어코 설득되게 만드는 연출을 통해 이 영화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완성시킨다.
분명 기본적으로는 로맨스 장르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로맨스물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Asako I & II>라는 영어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결국 닮은 외모의 두 남자를 만나면서 아파하고, 선택하고, 후회하는 아사코라는 이물의 성장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며 어떤 시퀀스가 펼쳐짐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실로 끔찍했던 동일본 대지진을 겪기 전과 후의 일본 사회에 대한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그 어떠한 측면에서 보든 제법 인상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영화의 호불호는 극 중에서 아사코가 때로는 충동적으로, 때로는 뒤늦은 고민 끝에 행하는 몇몇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크게 갈릴 듯 보인다. 상영관에서도 때때로 실소가 들렸던 만큼 분명 누군가에겐 그녀의 행동이 마냥 황당하게만 느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보이는데, 처음엔 충격적으로 다가온 아사코의 행동은 '만약 내가 저 상황이면 크게 다를까'에 대한 생각을 하며 점점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낸다. 비록 큰 상처와 고통을 겪었다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쉽게 제어할 수도, 억누를 수도 없는 것이기에,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다 보면 결국 아사코의 행동은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일 뿐인 안타까운 본능처럼 느껴진다.
다수의 CF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국내에서 인지도를 쌓아 온 카라타 에리카는 전개 내내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아사코를 안정적으로 소화하면서 스크린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뤄내며, 영화의 활력을 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해낸 조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히가시데 마사히로의 호연인데,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기생수> 등 전작에서도 맡은 캐릭터를 충실히 소화해낸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한 단계 넓힌 듯 보인다.
<아사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떤 면에선 그저 낯설고 이질적인 로맨스 영화같지만 어떤 면에선 지극히 공감되고 이해되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그래서 더욱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 결말을 아는 상태에서 다시 관람하면 지금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더욱 애정하게 될 것만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만큼 상영관이 남아있을 때 꼭 2차까지 찍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