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거리는 연출마저 사랑스럽다.
19.03.17. @CGV평촌
이틀 연속 일본 영화 관람에 나서게 된 오늘, 어제 본 <아사코>와는 정확히 대비되는 분위기의 로맨틱 코미디 <철벽선생>을 관람했다. 기본적으로 유치함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일본의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가 때로는 의외로 취향을 저격하기도, 때로는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로 참담하기도 했던 만큼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이 영화는, 예상했던 대로 러닝타임 내내 오글거리는 상황이 연달아 펼쳐지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무난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영화는 운명의 남자와 꿈 같은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고등학생 사마룬이 담임 선생으로 새로 전임 온 히로미츠에게 첫눈에 반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철벽선생>이라는 국내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미소조차 잘 보이지 않는 냉정한 성격의 히로미츠는 사마룬의 뜻대로 쉽게 넘어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선생에게 구애를 펼치는 사마룬의 행동은 내내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펼쳐진다.
극장 로비에 흘러나오는 예고편만으로도 결코 만만한 영화가 아닐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던 이 작품은 생각했던 만큼, 혹은 생각 이상으로 오글거리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극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에서조차 쉽게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과장된 행동과 몸짓을 선보이는 사마룬의 활약을 필두로 도저히 진지하게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황당한 전개가 잇달아 펼쳐지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오글거림의 연속은 제법 효과적으로 재미를 선사한다.
장르 특성 상 전형적인 플롯으로 흘러가는 이 영화에 매력을 더하는 것은 단연 두 주연배우의 활약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하마베 미나미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무척이나 엉뚱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한 캐릭터 사마룬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낸다. 어쩌면 그저 짜증나고 황당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을 캐릭터이지만, 이를 뻔뻔하면서도 매력적으로 연기한 하마메 미나미의 활약은 [노다메 칸타빌레]의 우에노 주리를 떠올리게도 만든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타케우치 료마 또한 왜 그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많은 배우 중 한 명으로 떠올랐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은 매력을 물씬 뽐낸다. 그가 보여준 매력과 별개로 그가 연기한 히로미츠라는 캐릭터의 행동이나 성격은 어느 순간부터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록 결코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상황들이 난무하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재미를 선사하던 영화는 히로미츠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소꿉친구 아아카가 등장하면서 다소 활력을 잃기도 한다. 가뜩이나 교사와 제자의 로맨스라는 기본 테마에 이미 사마룬을 짝사랑하는 동급생 코타케가 가세한 상황에서 스토리 전개가 삼각관계에 이어 사각관계로까지 번지다 보니 활력 넘치던 영화가 조금은 루즈하게 느껴지는 아쉬움을 낳고 만다. 게다가 히로미츠와 사마룬의 관계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두 인물 코타케와 아아카의 성격이 지나치게 전형적인 것도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그 외 전개 상에서도 조금 당황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는데, 중간중간 히로미츠를 향해 밑도 끝도 없는 구애를 펼치를 사마룬보다 '굳이' 제자와 단둘이 연주회를 보러 가는 히로미츠의 행동이 더욱 이해가지 않기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는 결말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글거림과 별개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설정이 몇 차례 펼쳐지는 것은 어쨌든 로맨틱 코미디로써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
정리하자면 분명 전개 과정에서의 아쉬움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개연성이나 현실성을 따지고 들 구석도 없이 황당함으로 밀어붙이는 뻔뻔함이 자아내는 매력은 물씬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해 개봉해 뜻밖의 큰 재미를 안겨준 <내 이야기!!>만큼의 재미를 선사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끝까지 보는 것조차 힘들었던 비슷한 소재의 영화 <한낮의 유성>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