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타임 룩 앳 유>

그저 <비포 선라이즈>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들 뿐.

by 뭅스타

19.03.19. @CGV평촌


따뜻하다 못해 더워진 오늘 같은 날에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았던 영화 <에브리타임 룩 앳 유>을 관람하였다. 생각한 대로 영화는 유럽의 다양한 나라들 저마다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과 위로를 자아내는, 제법 인상적인 경험을 선사하였다. 물론 전개가 거듭될수록 감흥이 떨어지는 것은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화는 먼 길을 떠나고자 하는 얀이 마찬가지로 여행길에 나선 율의 캠핑카에 몸을 싣게 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각 다른 이유로 먼 여정에 나선 동갑내기 얀과 율은 함께 여행을 다니는 과정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movie_image5W4NKA1G.jpg


관람 후기를 보며 예상했던 것처럼, 영화는 오프닝부터 전개 과정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를 떠올리게 한다. 여행길에 나선 낯선 두 남녀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때때로 그것이 열띤 토론으로까지 발전한다는 것부터 그들이 끝끝내 깊은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까지 무척 닮아있는 이 영화는, <비포 선라이즈>를 애정하는 나에게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욱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매력으로는 각 나라의 풍경을 담아낸 아름다운 영상미를 꼽을 수 있다. 독일을 시작으로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까지 얀과 율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여행 속 풍경은 그것을 지켜보는 자체만으로도 마음 한 편을 편하게 해준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색감으로 그려낸 유럽의 풍경은 일종의 로드 무비로써 갖춰야 할 매력을 물씬 자아내며 자연스럽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욕구를 샘솟게 만든다.

movie_imageENVDIA25.jpg


더불어 <비포 선라이즈>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호흡과 견주어도 크게 손색 없을 것 같은 두 배우의 호흡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호모 사피엔스까지 언급하면서 펼쳐지는 협동과 경쟁에 대한 설전부터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차이에서 오는 논쟁까지, 때때로 심오하고 철학적인 대화까지 오가는데다 영화가 오롯이 두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그들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느냐가 관건인 상황에서,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 호흡은 영화의 몰입감을 높여주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만, <비포 선라이즈>에서는 두 남녀가 나누는 대화가 때때로 복잡하고 난해할지라도 그것이 영화의 흐름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졌다고 생각되는 반면, 이 영화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때때로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두 남녀가 초면에 나누는 대화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심오한 주제가 연이어 펼쳐지다 보니, 이를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상황 자체가 조금은 밑도 끝도 없이 느껴진다고 할까.

movie_imageC69TORU3.jpg


그런 한편, 120분이라는 짧지만은 않은 러닝타임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러닝타임과 상관없이 그 안에 이야기가 내내 흥미롭게 펼쳐진다면 마지막까지 만족스러운 관람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얀과 율이 본격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들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후반부의 전개가 급격히 힘을 잃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남기며 아쉬움을 자아낸다. 이전 100분동안의 스토리는 나름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후반 20분 여를 남겨두고 갑자기 루즈해져버리고 마는 것은 꽤나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비포 선라이즈> 하위 호환'이라는 누군가의 관람평보다 이 영화의 소감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비포 선라이즈>만큼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를 물씬 선사하며 그 자체로 일종의 힐링을 안겨주는 것은 사실이나 매끄럽지 못한 전개나 갑작스레 힘을 잃고 마는 후반부가 선사하는 아쉬움은 더더욱 극명한 대비를 낳고 마는 영화였다고 할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가뜩이나 싱숭생숭한 요즘, '영화에서처럼 캠핑카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나쁘지만은 않았던 관람으로 기억될 것 같기는 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철벽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