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어렵지 않은 주제를 구태여 난해하게 풀어낸다.

by 뭅스타

19.03.20. @CGV평촌


오늘 개봉한 세 편의 한국 영화 중 가장 기대치가 높았던 그 영화 <우상>을 관람했다. <한공주>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이수진 감독의 5년만의 차기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 영화는 아쉽게도 그토록 높았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어떤 의미에서든 무척 강렬하고 충격적이지만, 그 충격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은 느낌이랄까.

누군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구명회의 동선을 따라 펼쳐지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큰 흥미를 자아낸다.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던 유력한 차기 도지사 후보 명회는 그의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저지르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나서고, 그 과정에서 아들을 잃은 남자 중식이 필사적으로 아들의 사고 원인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명회의 숨통을 조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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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144분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러닝타임동안 극도의 몰입감을 자아내면서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펼쳐질지 주목하게 만드는 것만큼은 확실한 강점으로 다가온다. 뜨거운 지지를 받는 도지사와 지체장애 아들을 둔 철물점 주인, 그 어떤 접점도 없을 것 같은 두 인물이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오는데, 특히 사고의 실체를 초반부에 공개함으로써 자아내는 서스펜스는 꽤나 효과적이다.

명회와 중식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펼쳐지던 영화는 미스터리한 인물 련화가 전개에 개입하면서 조금 더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때때로 어떻게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지 않은 건지 의문을 갖게 하는 잔혹한 묘사와 긴장을 고조시켜주는 음악의 활용 또한 영화의 음산하고도 서늘한 정서를 극대화하면서 세 인물 각자의 심리와 행동을 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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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는 내내 세 남녀의 복잡한 관계나 곳곳에 깔린 상징성 때문에라도 자연스레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떠올리게 만든다. <버닝>이 그러했듯 이 영화 역시 각각 다른 목적을 갖고 나아가는 인물들이 행하는 때때로 무척 충격적인 행동들이 볼거리를 자아내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의 불친절하고 모호한 태도는 이를 찬찬히 분석하고 싶다기보단 조금은 당황스럽고 찝찝한 뒷맛을 남기는 데 그치고 만다.

사람이 사람을 '우상'으로 받들고 그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것부터가 어떤 면에선 그저 어리석은 행위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이 영화는 끝없이 파괴되고 추락하면서도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인간 본연의 파괴성과 이를 대하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전혀 다른 공간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인물들의 대립과 (전략적) 화해를 통해 그리고자 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주제의 깊이만큼은 제법 인상적으로 다가오나 이를 마치 구태여 장면 장면들을 더 심오하게, 더 난해하게 그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듯한 연출은 아쉽게 다가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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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 머리 속에 수많은 물음표를 남기더라도 이것을 찬찬히 되짚어보면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고 싶어지는 영화는 충분히 많지만, 이 영화의 경우 의도적인 자의식 과잉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 것처럼 보여 선뜻 애정을 보내기가 힘든 느낌이라고 할까. 이는 마치 비슷한 의미에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고 나에게도 불호에 더 가까웠던 <비밀은 없다>가 선사했던 느낌과도 무척 흡사하다.

기대에는 분명 미치지 못했지만 공장에서 찍어낸 듯이 유사한 장르가 유사한 플롯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상업 영화들 속에서 쉽게 흡사한 작품조차 찾기 힘든 이 영화의 개성이나 이를 만들어낸 감독의 뚝심은 분명 높이 살 만 하며, 각자에 대한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 세 배우의 강렬한 연기를 보는 재미 또한 대단하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그리고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쉽게 정을 주지도, 쉽게 공감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할 것 같은 영화의 정서는 그저 지나친 과잉이 낳은 아쉬움으로 비춰질 뿐이다.

몇 가지 덧붙이자면, 물론 모든 대사를 온전히 이해해야만 할 필요는 없어보이긴 하지만 대충 이런 분위기의 말을 했겠거니 유추를 해야 할 정도로 쉽게 들리지 않는 대사들은 더더욱 영화에 거리감을 갖게 만들 뿐이며, 98억의 제작비가 들였다고 알려진 이 영화의 배급사가 예술영화 위주의 배급을 담당하는 CGV아트하우스라는 것은 이상한 모순이 꽤나 황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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