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 진부함.
19.03.21. @CGV평촌
세 편의 한국 영화가 동시에 개봉한 상황에서 '한국영화 3파전'이란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독주 체제를 굳혀가고 있는 <돈>을 관람하였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포스터부터 기대보단 우려를 갖게 만들었던 이 영화는, 아쉽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처참하게 다가오고 말았다. 분명 어제 본 <우상>보다 30분 가량 러닝타임이 짧음에도 그보다 훨씬 길게만 느껴진 건 왜일까..
(당황스럽게도) 예상했던대로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후의 전개도 예상했던 것에서 한 치의 오차도 벗어나지 않은 채 펼쳐진다. 부자가 되고 싶어 주식 시장에 뛰어든 신입 브로커 일현은 수익을 내지 못하며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나던 중 일명 번호표라고 불리는 작전 설계자와 만나며 단숨에 일확천금을 거머쥐게 된다. 한편, 한순간에 모두가 주목하는 증권계 히트메이커로 떠오른 일현 앞에 금융감독원의 사냥개 지철이 등장하면서 일현의 숨통을 조여온다.
앞서 말했듯 포스터부터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연상시키는 영화는 초반부의 전개 또한 그와 무척 유사하게 흘러간다. 야망은 넘치지만 제대로 이름을 떨칠 기회조차 없던 주인공이 찾아온 뜻밖의 기회를 통해 단숨에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는 과정은 속도감 있게 펼쳐지면서 나름의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며, 편집과 음악 등의 연출적인 면에서도 긴장을 자아내고자 한 노력은 엿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미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나온지 5년이 지난 상황에서 이 영화의 전개는 그저 포스터만 보고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던 그 전개가 진부하고 식상하게 펼쳐질 뿐이다. 단숨에 큰 돈을 거머쥔 주인공이 더욱 큰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의 길로 나아가면서 타락의 위기를 맞이한다는 설정은 그 전형적인 과정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뭐, 성공을 맛본 주인공이 타락하게 된다는 스토리 자체는 좋다. 비록 진부할지라도 이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그 안에 인상적인 메시지를 담아낸다면 하나의 작품으로써 충분히 개성 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큰 틀을 메우는 알맹이들 또한 그저 실속없이만 느껴지는 탓에 그 무엇도 남는 것 없는 허무함만을 안겨준다. 당장 주인공 일현의 경우 그가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특별한 이유도, 그 과정에서 느끼는 내적 갈등이나 고뇌도 유의미하게 다뤄지지 않다 보니 그저 성공을 맛보고 개차반이 되어버린 인물이 뒤늦게 성찰한 '척' 하는 과정을 무의미하게 지켜보게 만들 뿐이다.
영화의 배경이자 중심이 되는 소재는 증권 시장이다. 증권 시장에 대해서도, 주식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만큼 혹여 이해를 잘 못 하지는 않을까 했던 걱정과 달리 영화는 그 소재를 꽤나 친절하게 풀어낸다. 다만, 그것이 주식 시장을 깊이있게 분석하면서도 이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기 보다는, 애초에 주식 시장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해 이를 그것이 곁가지처럼 다룬 탓에 부득이하게 친절하게 느껴진 것처럼 다가온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긴장감이 느껴져야 할 상황들도 그저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으로만 보이고, 때때로 깊이 있게 접근하지 못할 상황을 애써 무마하기 위해 빠른 편집으로 승부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거의 모든 부분이 처참하게만 느껴진 가운데서도 일현을 연기한 류준열의 호연만큼은 두드러진다. 그는 사실상 일현의 원맨쇼라고 할 수 있을 이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데, 최근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도 그의 연기가 식상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도 매 작품마다 다른 연기로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와 별개로 <독전>부터 <뺑반>과 이 영화까지 그가 주연급으로 출연한 최근작들이 개인적으로 영 아쉽기만 한 것은 유감이지만.
애초에 기대치가 높지 않았던 영화가 그 기대치마저도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의 기분은 더더욱 허무하기만 하다.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주인공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게 만들지도, 전개 과정에서 신선함을 자아내지도 못한 이 영화가 그저 짜증만을 남기고 만 것처럼. 어제 개봉한 세 편의 한국 영화 중 가장 대중의 평가가 좋았던 이 영화가 개인적으론 이렇게나 아쉽게 다가오니, 내일 관람할 예정인 <악질경찰>이 더더욱 걱정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