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길티>

시각적 장치를 배제함으로써 조성되는 쫄깃한 스릴.

by 뭅스타

19.03.26. @CGV평촌


무조건 보고 싶은 영화만 다섯 편에 달할 만큼 기대작이 몰아치는 금주의 개봉작 중 <더 길티>를 첫 영화로 관람하였다. 지난 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 영화는 전형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스토리를 영리한 연출로 잘 풀어낸, 주목할 수밖에 없을 신인 감독의 호기로운 장편 데뷔작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긴급 신고 센터 교환대에서 근무 중인 경찰 아스게르가 한 통의 신고 전화를 받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화를 건 여성이 누군가에게 납치되었음을 직감한 아스게르는 피해자를 무사히 구출하겠다는 목표만을 갖고 단독 행동을 펼치는데, 납치 사건에 얽힌 실마리가 하나 둘 풀리면서 영화는 점점 더 극한의 긴장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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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반 몇 분만 보고도 이와 굉장히 유사한 플롯의 한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다름 아닌 할리 베리가 주연을 맡은 2013년작 <더 콜>인데, 긴급 센터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납치 전화를 받은 후 이에 대처한다는 설정은 무척 흡사한 두 영화는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더 콜>과는 또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러닝타임 내내 오직 긴급 신고 센터 내부의 모습만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납치된 신고 여성 이벤이 차를 타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상황도,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자녀 마틸데의 상황도 오직 전화 내용을 통해서만 그려질 뿐 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철저히 배제된 채 진행된다. 바로 이 점이 전개 중간중간 납치된 여성이 납치범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더 콜>과 다른 개성을 안겨주는 부분이며, 동시에 이 영화만의색다른 재미와 긴장을 자아내는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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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를 보는 관객은 여러 인물들과 전화를 통해 정보를 얻게 되는 주인공 아스게르와 철저히 동등한 입장에 놓인다. 관객이 듣는 것은 곧 아스게르가 듣는 것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납치 사건에 한해서는 아스게르와 관객 양쪽 모두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같은 정보만을 함께 공유한다. 이 상황에서 아스게르가 이벤을 구출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사실상 리얼타임으로 진행되는 만큼 영화는 더더욱 숨을 죽인 채 앞으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주목하게 만든다.

한편 중반부 이후, 영화가 시각적 요소를 배제한 것은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위함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제아무리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소리만 듣고 상상하는 것과 직접 눈으로 마주하는 것은 극명한 차이가 있다. 소리로만 상황을 파악한다는 것은 때로는 상황의 한 면만을 보는 오해를 불러모을 수 있다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방심하게 되는 이 점을 활용한 영화의 후반부는 예상치 못한 큰 충격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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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관객이 유일하게 전후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정보가 있다. 바로 아스게르가 어떠한 이유에서 다음 날 최종 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인데, 과연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게 만들던 영화는 이윽고 이에 대한 실마리가 풀림에 따라, 그리고 그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납치 사건과 절묘하게 오버랩됨에 따라 단순히 재미와 긴장을 자아내는 스릴러를 넘어 보다 깊이 있는 드라마를 선사하기도 한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지난해 개봉작 <서치>가 시각적 요소를 통해 긴장을 선사했다면 이 영화는 그와 반대되는 청각적 요소를 통해 긴장을 선사하는데, 두 영화 모두 일반적인 스릴러 장르의 플롯으로 풀어냈다면 마냥 특별하다고 할 수 없을 스토리는 확실한 개성과 영리한 연출로 풀어낸 신예 감독의 패기 넘치는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런 점에서 <서치>를 재밌게 본 이들이라면 그와는 또다른 스릴을 선사하는 이 영화 또한 색다른 매력을 지닌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러닝타임도 88분밖에 되지 않는 만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스릴러물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제목이 말하는 '죄책감'이 단순히 영화 속 인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개를 지켜보며 스스로 확신하고 현혹됐던 자신을 향한 자책으로 이어지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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