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필, 기대되는 감독에서 믿고 볼 수 있는 감독으로.
19.03.27. @CGV평촌
개봉을 손꼽아 기다려 온 만큼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그 영화 <어스>를 오늘의 첫 영화로 아침 일찍부터 관람하였다. 신선한 스토리와 강렬한 연출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겟 아웃>의 조던 필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이 영화는, 주저없이 5점 만점을 줬던 <겟 아웃>에 비해선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조던 필이 얼마나 뛰어나고 영리한 감독인지 또 한번 증명해낸 작품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1986년의 산타 크루즈를 배경으로 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단숨에 굉장한 긴장을 선사한 영화는 여름을 맞아 해변 근처 별장으로 여행을 떠난 가족이 그들과 똑같은 생김새의 정체 모를 이들과 맞닥뜨리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대체 도플갱어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쉽게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공포를 자아내는 영화는 점점 그들의 사연이 드러나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공포 영화'라는 장르로써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겟 아웃>이 그랬듯 점프 스케어를 통해 관객을 놀래키는 대신 관객을 사로잡는 기묘한 분위기를 통해 스릴을 자아낸다. 이른바 <컨저링>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공포 영화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 하는 만큼 어쩌면 공포 영화라면 진저리 치는 이들도 한번쯤 도전할 수 있을 만한 이색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한편, 대놓고 관객을 놀라게 하거나 극한의 공포에 몰아넣는 상황은 적을지라도 러닝타임 내내 숨조차 크게 들이쉴 수 없을 만큼 심리적인 압박감은 상당하다.
<겟 아웃>이 공포 장르를 베이스로 하면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아냈던 것처럼, 이 영화 또한 상영관을 나선 후에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듯한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여전히 미국 사회에 남아있는 인종 차별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었던 감독은 다시 한번 약자들의 입장에 귀 기울이게 만들고 그들을 약자로 남게 한 미국 사회의 병폐를 차가운 시선으로 비판하면서 다시 한번 단순한 재미를 넘어 사뭇 묵직하게 느껴지는 여운을 선사한다.
영화의 제목인 <Us>는 그 자체로는 '우리'를 뜻하는 한편, '미국'(U.S)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담도 있는 듯 보인다. 트럼프의 자국민 중심적인 이민 정책이 여전히 중심 화두로 대두되는 미국 사회는 곧 포용과 배려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누군가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철저히 멸시당하는, 지극히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문제가 팽배한 사회를 향한 감독의 비판적인 시각은 이번에도 생생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애디를 연기한 루피타 뇽은 그녀에게 아카데미 트로피를 안겨준 <노예 12년>보다도 돋보이는 열연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더불어 <겟 아웃>보다는 그 비중이 적기는 하나 그와 마찬가지로 중간중간 유머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긴장감의 완급 조절을 효과적으로 해낸 것도 영화의 강점으로 다가온다.
사실상 스토리, 메시지, 연기 등 여러 요소들보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영화의 사운드이다. 오프닝부터 심상치 않던 음향 효과나 중간중간 깔리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를 넘어 그 자체로 대단한 예술처럼 느껴진다. 음악 영화가 아님에도 눈을 감은 채 사운드를 듣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놀라운 체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을 정도인 만큼 극장에서, 그것도 사운드가 돋보이는 상영관에서 봤을 때 더욱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편,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명쾌히 알 수 있던 <겟 아웃>에 비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어떤 인물이 내뱉는 대사를 통해 주제의 상당 부분을 드러낸 것은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며, 전작보다 호불호가 더욱 극명히 갈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코미디언으로 출발한 조던 필에게 수많은 트로피를 안겨준 연출 데뷔작 <겟 아웃>이 우연히 나온 수작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엔, 그리고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작품 세계를 펼쳐나갈지 더더욱 큰 기대를 갖게 만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