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또 한 편의 실화, 그저 그정도로만.
19.03.30. @CGV평촌
용케도 제대로 몰아친 금주 개봉작들을 하나 하나 섭렵하고 있는 요즘, 오늘은 <스틸 앨리스>를 연출한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의 신작 <콜레트>를 관람했다. 최근의 흐름을 반영한 듯한 이 영화는 여성 작가로서 자유를 억압받은 채 살아야 했던 실존 인물의 삶을 인상적으로 그려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보다 매력적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는 소설 편집자 윌리와 결혼해 파리에서 생활하게 된 시골 출신의 콜레트가 남편의 부탁으로 소설을 집필하게 된 후 겪는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그려나간다. 그녀 자신의 어린 시절과 파리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써내려 간 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얻을 뿐 아니라 소설의 주인공 클로딘이 여성들의 롤모델로 떠오르면서 콜레트는 자유를 향한 날갯짓을 펼치기 시작한다.
코코 샤넬과 조앤 K. 롤링 등에게도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진 프랑스의 여류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파리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어색해하고 그저 남편의 성공만을 바라던 콜레트가 점점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적잖은 흥미를 자아낸다. 남편 윌리의 이름으로 써내려간 그녀의 소설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심적 변화를 겪기 시작하는 주인공이 더이상 그늘 뒤에 숨어있지 않겠노라 결심하고 그녀만의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은 차분한 연출 속에서도 힘을 발휘하며 내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어제 관람한 <아틱>이 온전히 매즈 미켈슨의 영화였던 것처럼 이 영화 <콜레트>는 온전히 키이라 나이틀리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내내 단 한 순간도 정을 줄 수 없는 비열한 인물 윌리를 연기한 도미닉 웨스트를 비롯한 조연 배우들도 그들 각자의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내지만 결국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순전히 키이라 나이틀리의 몫이며 그녀는 이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히 해낸다.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 <안나 카레니나> 등에 이어 오랜만에 시대극으로 돌아온 그녀는 19세기 전후를 살아간 콜레트를 완벽히 연기해낸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떨칠 수 없던 인물이 세상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과정은 이것이 실화라는 점에서 더더욱 인상깊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조롭고 무난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그 이유는 지난 해 12월 개봉한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부터 얼마 전 개봉한 <더 와이프>,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리지>까지 최근 이와 비슷한 소재, 이와 비슷한 스토리의 영화가 무척 많았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결국 언급한 다른 작품들처럼 소재를 뛰어넘을 만큼의 매력을 안겨주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다소 밋밋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이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두드러지는데 벌여놓은 이야기들이 하나 하나 매듭지어져야 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나 여운을 안고주어야 할 후반부가 전체 영화에서 가장 산만하고 정신 사납게 느껴지다보니 이전까지 쌓아온 장점마저 퇴색시키고 만다. 특히 엔딩에 도달하기까지의 십 여 분간의 시퀀스는 그 전의 스토리에 비해 급격히 마무리되는 듯한 인상이 강해 조금은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만이 선사할 수 있는 남다른 매력도 분명히 존재하고 그 안에서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해내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열연도 무척 돋보이지만 112분이라는 러닝타임을 마지막까지 힘 있게 풀어가지 못한 연출에 대한 아쉬움 역시 분명히 나는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변화하는 여성상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속속들이 나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더 페이버릿> 정도를 제외하면 그러한 영화들이 소재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안겨주지는 못한다는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ps. 이런 설정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비영어권의 인물들을 그리면서도 영어를 쓸거면 뻔뻔하게 영어만 쭉 썼으면 좋겠다. 말을 영어로 하면서 글은 프랑스어로 쓰는, 그러면서 중간중간엔 또 프랑스어를 구사하기도 하는 상황이 유발하는 혼란스러움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