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바치는 사려깊은 위로.
19.04.03. @CGV평촌
오늘 개봉한 따끈따끈한 신작이자 일찍부터 무척 보고 싶었던 이종언 감독의 데뷔작 <생일>을 관람했다. 일찍부터 알려졌듯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전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도 이를 감정적으로 풀어내지 않음으로써 진정성과 의미를 물씬 느낄 수 있던 깊이있는 작품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한 남자가 짐을 한 가득 안은 채 어느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곧 그 집안의 아들 수호가 세월호 사고로 멀리 떠났음을 묘사하는 영화는 그 사고 이후로 사이가 소원해진 부부 정일과 순남이 다가오는 수호의 생일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그려나간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리고 많은 이들이 관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영화는 초반부터 눈물샘을 자극한다. 사고 이후 2년 여가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여전히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 날을 기억하고 그 사고로 떠나보낸 이들을 기리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초반부터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낸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이렇게나 많이 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눈물을 한 가득 쏟게 만드는 이 작품은 상영관을 나선 후에도 쉽게 가시지 않을 여운을 선사한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관객들을 울리기 위해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작위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세 번에 걸쳐 등장하는 플래시백을 비롯해 눈물을 쏟아내는 인물을 보며 함께 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지점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영화가 선사하는 감동과 여운은, 2014년의 그 날 이후 함께 아파하고 괴로워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건듦에서 비롯되는 눈물처럼 느껴진다.
사고를 둘러싼 여러가지 이슈들로 인해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번진, 그런 만큼 누군가에게는 그 소재만으로도 진저리치게 만드는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만 영화는 정치적, 사회적 시각을 철저히 배제한 채 사고 이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함으로써 더욱 깊이있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괴로워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연대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나 <아주 긴 변명>이 그러했듯 잔잔한 연출과 담담한 묘사 속에서 묵직한 여운을 선사한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후 18년 만에 함께 호흡을 맞춘 두 배우 설경구, 전도연의 연기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진한 몰입을 이끌어낸다. 각각 <소원>과 <밀양>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물을 연기한 바 있는 두 배우는 전작과는 또 다른 얼굴, 또 다른 연기를 통해 기시감을 씻겨내며 자연스레 그들의 상황을 이입하고 함께 눈물 흘리게 만든다. 그들 외에도 영화에 출연한 다양한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안정적으로 연기해내는 가운데, 지난 해 각각 <당신과 부탁>과 <살아남은 아이>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한 윤찬영, 성유빈 배우를 한 작품에서 만나는 것 또한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시놉시스만 봐도 깊은 감동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예상되는 영화인 만큼 그저 가볍고 편안한 영화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겐 힘겹고 부담스러운 관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소재를 한 영화로써도, 혹은 그저 어떤 이유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을 위로해주는 영화로써도 무척 의미있고 무척 의의가 남는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만큼 많은 이들이 관람하고 함께 이 여운을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고 괜시리 이 영화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날 어디에서 뉴스를 접하고 어디에서 함께 아파하고 괴로워했는지가 선명히 기억에 남는,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슬퍼했던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남겨진 이들을 향한 진심을 고스란히 녹여내며 영화가 갖춰야 할 미덕을 챙긴 이 영화가 선사하는 위로는 무척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지난 달 개봉한 <악질경찰>에서 이를 풀어낸 방식과 비교하면 더더욱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한편, 정일과 순남의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이 다소 편의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아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