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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뭅스타 Jun 17. 2019

<배심원들>

좋은 소재를 '감정적으로'만 풀어내다.

19.05.17. @CGV평촌


시사회 이후의 평들이 꽤 준수했던 만큼 나름대로 기대가 컸던 영화 <배심원들>을 관람하였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2008년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는 이 영화는, 어쩌면 참신할 수도 있을 소재가 한국 영화 특유의 전형적인 감성과 만나 큰 매력을 자아내지 못한 작품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기대가 컸기에 더더욱 아쉽고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영화였달까..

영화는 최초로 국민이 참여하는 재판이 열린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이 뜨거운 2008년의 어느 날을 배경으로 한다. 성별도, 직업도 제각각인 8명의 배심원들은 이미 범인이 자백을 한 만큼 범죄 사실은 분명해 보이는 친모 살해 사건을 심판하게 된다. 양형 결정만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8번 배심원 남우는 사건 전반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고 그렇게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진다.


법에 대해 빼어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살인 사건의 유무죄 여부를 따진다는 점에서 영화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1957년작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감독 스스로도 해당 영화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밝힌 만큼 자연스럽게 두 작품을 비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아쉬운 지점이 많은 이 영화를 영화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걸작으로 불리는 <12인의 성난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더더욱 이 영화의 단점을 부각시키고 만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단점은 초반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전개를 풀어내는 방식이 지나칠 정도로 감성적이라는 것이다. 유죄가 명백해 보였던 피고인이 어쩌면 무죄일 지 모른다는 가설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배심원들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설정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인물들 간의 갈등이 커지며 감정이 격해질 때의 대사와 상황 묘사는 그저 관객들에게 호소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내 삽입되는 음악은 그렇게 영화 전체에 흐르는 이상한 분위기를 더더욱 산만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만다. 특히 본격적으로 남우가 피고가 무죄일 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 후부터 흘러나오는, 경쾌하다 못해 방정맞은 음악은 극 상황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져 대체 이 영화를 어떤 태도로 바라보길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혼란만을 야기한다. 영화를 보면서 배경 음악이 이다지도 몰입을 방해한 것이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로 단 한 순간도 음악은 극의 분위기를 살려주지도, 극의 몰입을 높여주지도 못한다.

더불어 증인이나 배심원들의 의견이 변화할 때마다 사건 당일의 상황을 계속해서 플래시백으로 풀어내는 것 역시 조금은 지나치게 친절하고 편의적이지 않나 하는 아쉬움을 자아내며, 뜬금 없이 튀어나오는 코믹 요소도 좀처럼 극에 어우러지지 못한다. 여기에 대체 이 영화에서 실화를 기반으로 한 부분이 어느 정도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초반부의 허무맹랑한 설정이 선사하는 황당함 역시 꽤나 충격적이다.


물론 영화에서 돋보이는 장점들 또한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법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들고자 한 연출 의도와 주제 의식만큼은 일관된 태도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매일같이 펼쳐지지만.) 또한, 과연 이 캐릭터를 이렇게 비중 있게 다뤄야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남는 것과는 별개로 극의 무게감을 더하는 문소리 배우의 연기는 언제나처럼 큰 힘을 발휘하며 이외에도 서현우, 백수장, 조수향, 심달기 등 조주연 배우들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남우 역의 박형식 배우의 경우 인물 자체의 성격때문일지는 몰라도 영화 내내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 듯한 아쉬움을 남기기는 하지만.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레퍼런스로 하면서 소재의 유사성 이외에 극을 풀어내는 방식을 한국식으로 풀어내고자 한 시도 자체는 흥미롭다. 하지만 조금은 지나치게 대중적인 접근을 의식한 듯한 연출 방향은 결국 극의 몰입을 저해시키는 결과만을 낳고 말았으며, 결국 감정에 치우쳐서 아쉬움을 남는 작품으로만 기억될 듯하다.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장르물이었기에 더더욱 컸던 기대, 그리고 더더욱 크게 남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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