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뭅스타 Jun 17. 2019

<어린 의뢰인>

아동 학대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또다른 가해를 전시하다.

19.05.23. @CGV평촌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볼 예정인 오늘, <선생 김봉두>, <여선생 VS 여제자> 등 주로 코미디 영화를 연출해 온 장규성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어린 의뢰인>을 첫 영화로 관람하였다. 간단히 말해 영화는 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의의만큼은 확실히 전달되지만, 그 의의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단점들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영화는 변호사로 성공하길 꿈꾸는 정엽이 잠시 아동복지시설에 근무하면서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빈, 민준 남매를 만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개를 시작한다. 그저 남들처럼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자라길 꿈꾸었던 남매는 함께 지내게 된 계모 지숙에게 끔찍한 학대를 받게 되고, 다른 이들처럼 학대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던 정엽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다빈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앞서 말했듯 영화의 뚜렷한 메시지만큼은 일련의 전개 과정에서 더할 나위 없이 확실히 전달된다.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폭력을 일삼으면서도 부모라는 이유로 이를 처벌하기가 어려운 현행 법에 대한 차가운 비판, 그리고 학대가 벌어지는 걸 버젓이 알고 있음에도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방관하는 이들을 향한 냉소적 태도는 영화 전반에 걸친 묘사를 통해 충분히 깨닫게 만든다. 방관적인 태도의 주인공 정엽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도, 과연 나라면 저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들 또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의도처럼 느껴져 의미있게 다가온다.

[응답하라 1988] 이후 출연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극에 활력을 더하는 감초 역할을 연기해 온 이동휘 배우는 웃음기를 최대한 배제한 캐릭터를 제법 안정적으로 연기해내며 어떤 작품에서든 비슷한 배역을 맡으며 자연스레 쌓이게 된 배우에 대한 피로감을 지워내는 데에 성공한다. 더불어 아동 학대를 일삼는 계모 지숙을 연기한 유선 배우는 극악무도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내며 영화 내내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인 다빈을 연기한 아역 배우 최명빈의 연기 역시 앞으로의 필모그래피를 주목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다만 영화의 장점은 뚜렷한 메시지가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뿐이다. 우선 영화는, 한참 이전부터 연출로 활동해 온 감독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 부분 촌스럽게 느껴진다. (어쩌면 오랜 경력이 이 촌스러움의 요인일지도 모르겠지만.) 남매를 무신경한 태도로 대하는 초반부터 결국 성격이 입체적으로 변화할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주인공 정엽을 그리는 방식부터 음악, 촬영, 편집, 그리고 전반적인 전개 과정까지 영화의 대부분의 요소들은 그저 오래 전에 어디서 본 것 같은 방식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듯한 기시감만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결코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지점은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영화는 초반부터 두 남매가 지숙에게 학대를 당하는 상황들을 구태여 친절하게,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물론 이러한 확실한 사건 묘사가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이점이 있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해 <미쓰백>이 그랬듯 아동 학대라는 소재를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 안일하고도 폭력적인 연출 방식으로만 남을 뿐이다. 학대의 피해자를 연기하는 어린 배우를 또다른 폭력으로 내몰면서 이를 트라우마를 방지하기 위한 심리 치료를 진행했다는 것으로 합리화하려는 태도는 그저 불쾌한 뒷맛만을 선사하고 만다.


소재 면에서는 <미쓰백>을, 전반적인 전개 방식에 있어서는 <증인>을 연상케 하면서 두 영화보다 주제 전달 면에서 돋보인다는 것은 물론 이 영화만의 장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폭력의 문제를 전하기 위한 방식으로 또다른 폭력을 택한 점이나 이후 장면을 훤히 예측하게 만드는 뻔하고 올드한 각본은 결국 한 편의 극영화로써 주제가 뚜렷하다는 것 이외에 다른 장점을 갖추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만다.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더더욱 그 문제를 이렇게밖에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기만 한.

매거진의 이전글 <배심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