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답습이지만, 그럼에도 줄리안 무어의 연기만큼은.
19.06.10. @CGV평촌
<엑스맨 : 다크 피닉스>에 이어 관람한 오늘의 두번째 영화 <글로리아 벨>. 감독이 지난 2013년 연출한 <글로리아>를 스스로 영어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셈인 이 영화는, 원작에 이어 글로리아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몰입과 흥미를 이끌어낸 작품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언제나처럼 놀라운 줄리안 무어의 연기력에 감탄하게 되는 것은 덤.
영화는 12년 전 남편과 이혼한 후 계속 새로운 사랑을 갈구했던 것처럼 보이는 글로리아가 비로소 세상을 향한 그녀만의 발자취를 남기기까지의 과정을 매력적으로 그려나간다. 두 자녀가 그들만의 새로운 가정을 꾸린 후 운명처럼 다가올 인연을 찾기 위해 클럽을 찾던 글로리아는 매력적인 남성 아놀드에게 첫눈에 이끌려 제 2의 사랑을 꿈꾸지만, 만남이 지속될 수록 글로리아를 억누르는 외로움의 깊이만이 점점 깊어져 간다.
비교를 할 겸 당장 오늘 새벽에 원작인 <글로리아>를 관람한 상황에서 이 영화 <글로리아 벨>은 기본적인 전개부터 세세한 설정, 주요 대사들에 이르기까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원작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기본적으로 리메이크 영화가 원작의 특징을 감독이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본인의 영화를 직접 리메이크한 이 영화의 경우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당혹스러움를 자아내기도 하는데 아무쪼록 이러한 자가 복제 속에서도 이 영화는 나름의 흥미를 선사한다.
비록 특별한 차이점을 찾기 힘든 동어 반복이 펼쳐지지만 원작을 보며 느꼈던 감흥이나 영화가 끝난 후에 깊이 이어지는 여운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히 빛난다.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는,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갔을 중년의 여성 글로리아가 그녀를 괴롭히는 고독의 무게에서 벗어나 영 성가시기만 했던 고양이를 보살피고 더이상 함께 춤을 출 상대를 찾지 않은 채 그녀만의 우아하고 멋진 춤사위를 펼치기까지의 과정은 이번에도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펼쳐진다.
결국 데칼코마니에 가까운 이 리메이크가 그럼에도 빛을 발하는 이유는 줄리안 무어의 놀라운 열연 덕분이다. 원작에서 글로리아를 연기한 칠레의 배우 폴리나 가르시아 역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만큼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 상황에서, 원작의 글로리아를 그녀만의 색깔로 재해석한 줄리안 무어의 연기는 여느 때처럼 놀랍고 또 놀랍다. <싱글 맨>, <로렐>, <스틸 앨리스> 등은 물론 <헝거게임> 시리즈나 <킹스맨 : 골든 서클> 등 블록버스터까지 출연한 어떤 작품에서든 그녀만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줄리안 무어의 활약은 그저 감탄을 자아낼 따름이다.
전 남편은 새로운 사랑을 이어나가고, 두 자녀는 그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상황에서 글로리아가 또 한번 그녀가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을 그 자체로 사랑해 주는 존재를 찾고 싶어하고 이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자 할 테이니. 그러나, 꼭 삶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기에 끝끝내 또 다른 사랑을 찾는 것에 실패하고 만 글로리아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유롭게 춤을 추는 마지막은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 우아하고 아름답다.
사실 상 98% 정도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2013년작 <글로리아>를 관람한 이들에겐 차별화되는 개성이나 매력을 전혀 안겨주지 못할, 굳이 챙겨 보지 않아도 상관 없을 리메이크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이렇게까지 똑 닮았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만큼 다소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원작의 글로리아를 그녀만의 독창적인 색깔로 새롭게 재해석한 줄리안 무어의 호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원작과의 차별점은 충분히 이 영화를 챙겨 볼 만한 가치있는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비결이자 원동력으로 다가온다. 줄리안 무어의 팬이라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더 나아가 무조건 관람해야만 할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