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요의 열연만큼은 반짝반짝 빛난다.
19.06.11. @CGV압구정
오늘의 영화로 포스터의 분위기부터 왠지 모르게 관심이 갔던 <하나레이 베이>를 관람하였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상당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 상실감을 잔잔한 정서 속에서 인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잔잔함의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이 결국 장점이자 단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남자가 숨이 탁 트일 만큼 아름다운 하와이의 해변으로 향하며 시작하는 영화는, 이내 아들이 서핑 도중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먼 길을 건너 온 주인공 사치의 동선을 따라가게 만들면서 급격히 분위기를 달리 한다. 하나뿐인 아들 타카시를 잃은 사치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하나레이 해변에 며칠 간 머무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닥친 상실을 해소하고 치유하고자 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영화는 아들을 잃은 후 그 슬픔을 쉽게 표현하지도, 해소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던 여자가 비로소 상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정적인 분위기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아들이 서핑을 하던 도중 목숨을 잃은, 한편 이러한 사연이 없다면 그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기만 한 하나레이 해변을 매년 찾던 사치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비로소 상실과 마주하기까지의 길고 긴 여정은 단조로운 전개에도 제법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앞서 계속 말했듯 영화는 무척이나 잔잔하고 정적으로 흘러간다. 오프닝과 엔딩에 걸쳐 두 번 흘러나오는 Iggy Pop의 'The Passenger'를 포함해 배경음악을 활용하는 장면은 다섯 시퀀스 내외에 불과하고, 인물들 간의 대화도 많지 않은 영화에서 대부분의 시퀀스는 침묵에 가까운 정적이나 잔잔한 해변의 주변음으로 대신 한다. 그런 만큼 자칫 무척 루즈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을 영화는 하와이의 풍경과 대비되는 사치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큰 흥미를 이끌어내며, 일부 시퀀스에만 음악을 활용한 절제의 연출 또한 결과적으로 영화의 매력을 더하는 효과를 낳는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빛나는 것은 주인공 사치를 연기한 배우 요시다 요의 연기이다. 따뜻함과 그리움의 정서를 간직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인물이자, 초반의 감정선이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줄곧 이어질 정도로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인물인 만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보이는 사치라는 인물은 이를 훌륭히 소화해낸 최적의 캐스팅 요시다 요의 호연을 통해 관객들이 그녀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든다. 한편 그녀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들의 연기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아쉬움도 남지만.
하루 아침에 아들을 잃었지만 아들과의 관계가 소원했던 상황에서 사치는 시체를 확인하는 순간에도, 장례를 치르는 순간에도, 그리고 다양한 이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순간에도,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채 담담한 태도를 유지한다. 아들이 떠났음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인지, 혹은 그것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몰라도 슬픔을 표현하지 않은 채 매년 하나레이 해변을 찾던 사치가 아들 또래의 두 청년을 만난 뒤 비로소 오랜 시간 응어리 진 슬픔을 토로하는 장면은 사실 상 이 장면을 위해 달려온 것처럼 보이는 영화를 먹먹하고 묵직한 여운으로 맞이하게 만든다.
그 누군가가 어떤 격려나 위로를 해준들 결국 스스로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 극복해 나가야 할 상실의 슬픔을 잔잔한 분위기로 흘러가면서도 어떤 순간에 큰 임팩트를 선사하는 방식으로 담아낸 작품이자 다시 한 번 장면 장면을 곱씹어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다만, 조금은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몇몇 플래시백의 활용은 다소 아쉽단 생각이 들며, 그보다 더욱 아쉬운 점은 최근에 상실의 감정을 훌륭히 그려낸 영화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