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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뭅스타 Jul 16. 2019

<이웃집 토토로>

나의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19.06.20. @CGV평촌


동심을 되찾아 줄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연이어 관람할 예정인 오늘의 첫 영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이 필요없는 걸작 <이웃집 토토로>를 관람하였다. 나도 무척이나 어렸던 초등학생 시절 조카와 함께 극장에서 관람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 영화는,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만난 오늘도 오랫동안 기억될 값진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아빠와 함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를 온 사츠키와 메이가 겪는 동화같은 일들을 그려나간다. 이사 첫 날부터 마쿠로 쿠로스케라고 불리는 숯 검댕이를 만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 두 자매는 머지 않아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독특한 생명체 토토로와 마주한다.


당장 몇 년 전 대학교 일본어 교양 수업 시간에 수도 없이 복습했던 작품인 만큼 장면 하나 하나가 무척 익숙하지만, 큰 스크린으로 관람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깊은 감동과 재미는 시험을 위해 봤어야 했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때보다는 사츠키와 비슷한 나이 때에, 혹은 그보다도 전인 메이와 비슷한 나이 때에 비디오 테이프로 관람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만들며 제법 진한 여운을 선사해주었달까.

결국 영화는 초반부 마쿠로 쿠로스케를 발견한 두 자매에게 자신도 어린 시절엔 그것이 보였다고 말하는 이웃집 할머니의 대사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토토로를 만나고 고양이 버스에 몸을 싣는 두 자매의 환상적인 체험은 오직 가족이 한데 모여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의 낙이었을 만큼, 그리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이루어질 수 있을 것만 같던, 한없이 순수한 어린 시절에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이기에 제대로 삶에 찌들어버린 지금에 와서 다시 만난 이 영화는 꽤나 아련하게 다가온다.


냇가의 다리도, 삐걱거리는 기둥도,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허름한 집도, 그저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두 자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언젠가 나에게도 존재했을 순수했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고,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은 지금의 모습에 쓸쓸해진다. 그 어떤 갈등도, 큼지막한 사건도 없이 모든 장면 장면이 아름답기만 한 이 영화를 보면서 괜시리 울컥해지는 것도 어린 시절과 지금의 괴리가 자아내는 이상한 기분때문이 아닐까 싶다.

극 중에서 단 네 개의 시퀀스에서만 등장하지만 그때그때마다 강렬한 존재감을 자아내는 토토로의 활약부터 하나같이 귀에 익은 히사이시 조의 아름다운 음악,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의 주된 테마이기도 한 자연과의 조화와 가족의 화합이라는 주제까지, 과거의 추억을 배제하더라도 그 자체로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 영화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따뜻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만약 언젠가 나에게 자녀가 생긴다면 바람이 솔솔 부는 여름 날 밤, 함께 관람하면서 또 하나의 추억을 쌓고 싶어지는 영화이기도.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만 이야기하라고 하면, <모노노케 히메>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에서 고민을 하겠지만,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동심을 자극하는 작품을, 혹은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꼽게 될 너무나도 아름다고 따뜻한 영화 <이웃집 토토로>. 그저 작화부터 스토리, 음악까지 모든 것이 인상적인 이 영화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88년에 나왔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새삼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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