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

인물들의 감정선을 좀처럼 따라갈 수 없다

by 뭅스타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승기가 군 입대 전 촬영을 마쳤으나 제대하고 나서야 개봉할 정도로 한참을 묵혀둔 끝에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던 이 영화는, 단 한 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는 클리셰의 향연 덕에 특별히 어떤 감흥도 선사하지 못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요새 줄곧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영화들만을 봐왔기 때문에 더더욱 처참하게 느껴지기도..


극심한 흉년이 지속되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송화 옹주의 혼사가 치러지면 가뭄이 해소될 것이라는 믿음 하에 대대적인 부마 간택이 시행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개가 펼쳐진다. 옹주는 부마 후보들을 한 명 한 명 염탐해 그들을 혼례 전에 만나보고 싶어 신분을 숨기고 궐 밖을 나오게 되고 궐 밖에서 사주풀이에 능한 조선 최고의 역술가 도윤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을 만나러 다니는 옹주와 우연히도 그녀의 여정 중 계속 맞닥뜨리게 되는 도윤과의 이상한 동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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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옹주의 어린 시절이 그려지는 플래시백부터 부마를 간택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영조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이 궁합을 믿고 이를 중시한다는 설정 아래에서 스토리를 진행한다. 옹주와의 혼인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남자들 속에서 최종 심사까지 통과한 네 명의 부마 후보들 면면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과정은 그들 각자의 독특한 개성 덕에 나름의 흥미를 선사하며 그들 이외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다만 문제는, 그 외에는 이 영화에 특별히 돋보이는 장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영화는 극후반부를 제외하면 옹주가 네 명의 부마 후보를 만나는 과정에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하지만 결국 영화의 주연이 그 누구도 아닌 역술가 도윤이라는 점에서 결국은 그와 옹주가 이뤄질 것이란 게 훤히 보이는 상황에서 이 과정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전개는 그저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전체가 심드렁하게 느껴지게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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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잘 견뎌내고 하면 영화의 후반부는 더욱 참담하다. 옹주가 만나는 세 번째 부마 후보 남치호의 이중적인 성격은 오직 갈등 상황을 야기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그려진 것만 같이 무척 작위적으로 느껴질 뿐이며, 이미 도윤을 꾀내어 그가 원하는 것을 얻었음에도 굳이 일을 벌이는 윤시경의 행동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황당하기만 하다. 한 시라도 빨리 궁으로 돌아가야겠다던 옹주가 왜 잠을 자다가 환각제에 취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대체 왜 시경은 환각제를 통해 그녀를 취하게 만들어야만 했는지 묻고 싶을 따름.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이며 드라마인 동시에 로맨스 요소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송화 옹주와 도윤이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는 감정선을 좀처럼 따라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궐 밖에 나온 옹주가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도윤에게 호감을 느낄 수는 있다고 해도, 대체 왜 도윤이 옹주에게 '단 한순간도 여인이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라는 말까지 할 만큼 연모의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는 쉽게 납득하기가 힘들다. 이는 어쩌면 두 캐릭터 각각을 연기한 심은경, 이승기 배우의 연기합이 썩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극대화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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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조복래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 이개시는 극 중 코믹 요소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그 개그 코드가 도저히 웃으래야 웃을 수 없을 만큼 작위적인 희화화, 어설픈 슬랩스틱에 그쳐 영화의 무게감을 떨어뜨리기만 할 뿐이며,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비리와 갈등은 영 루즈하게 다가와 얼른 영화가 끝나기만을 바라게 만든다. 그럼에도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래도 최소한 아무 생각 없이 본다면 마냥 나쁘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최소한 충격과 공포의 2월을 보내게 만들었던 세 편의 한국영화 <골든 슬럼버>, <흥부>, <조선 명탐정 : 흡혈괴마의 비밀>보다는 나았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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