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빌보드>

서늘함 속에서도 기어코 따뜻함을 선사하는 올해의 걸작.

by 뭅스타

도저히 개봉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던 그 영화 <쓰리 빌보드>를 관람하였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다수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데다가 비록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2관왕에 그쳤지만 다수의 작품상도 수상한 바 있는 이 작품은 한마디로, 주저 없이 올해의 첫 만점을 줄 수 있을만한 영화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영화는 끔찍한 강간 사건으로 딸을 잃은 엄마 밀드레드가 마을 외곽에 의미심장하고 도발적인 문구를 적은 세 개의 광고판을 내거는 것으로 시작한다. 광고판이 저격하는 대상인 경찰서장 월러비와 그를 따르는 경찰관 딕슨은 밀드레에게 해당 광고를 내려줄 것을 제안하지만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한 경찰을 무능하다고 여기는 그녀는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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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해 보인다. 몇 달째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경찰들에게 분노하는 어머니와 그런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찰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 간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는 이러한 설정들이 드러나는 초반부만 해도 과연 이 영화만의 특별한 개성이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결국 재능 충만한 스토리텔러이자 훌륭한 연출가인 마틴 맥도나는 자칫 전형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설정에 쓸쓸하고 처연한 동시에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메시지를 심어 넣고 있다. 영화는 피해자의 가족인 밀드레드를 마냥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그리지도 않으며 그녀가 원망하는 경찰들도 단순히 적으로 일반화하지 않는다. 대립 구도를 이루는 이 둘을 비롯해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 있음에도 결국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며 그들 각자에게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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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테일러 쉐리던 감독이 연출한 <윈드 리버>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는 듯한 이 작품은 그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적잖은 긴장감을 선사하며 때로는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감동을 선사한다. 세 개의 광고판에서 출발한 이 영화가 이다지도 마음 한편에 크게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마틴 맥도나의 훌륭한 각본이 큰 공헌을 한다. 전작 <킬러들의 도시>에서도 무척이나 탄탄한 시나리오에 감탄을 넘어 충격까지 선사했던 마틴 맥도나 감독은 이번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도 그만큼, 혹은 그보다 뛰어난 각본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직 보지 못한 <레이디 버드>의 시얼샤 로넌을 제외하면 샐리 호킨스, 메릴 스트립, 마고 로비가 모두 출연작에서 대단한 활약을 한 만큼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누구 한 명을 응원하기가 힘들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결국 여우주연상 트로피는 프란시스 맥도맨드에게 돌아가는 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매 장면마다 스크린을 장악할 정도로 차갑고도 카리스마 넘치는 아우라를 뽐내는 그녀를 비롯 우디 해럴슨, 샘 록웰, 케일럽 랜드리 존스, 루카스 헤지스 등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그 자체로 굉장한 재미를 선사한다. (한편으론 프랜시스와도 별 차이 없을 만큼 영화 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샘 록웰이 과연 남우조연상 후보로 오르는 것이 맞는 걸까 싶은 의구심을 남기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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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선사하는 가히 엄청난 여운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영화를 찬찬히 곱씹어보게 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라고 한다면 때때로 그보다도 더 뇌리에 강하게 박혀서 아무 생각조차 못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지난해 <사일런스>, <겟 아웃>, <덩케르크> 그리고 <1987>까지 총 네 편의 영화가 후자에 가까운 작품이었다면 올해는 이 영화가 그런 강렬하고도 강렬한 느낌을 안겨준 첫 영화로 자리 잡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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