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원하는 공포를 참 잘하는 영리함.
<기담>과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를 연출한 정범식 감독의 신작 <곤지암>을 관람하였다. 왠지 그렇고 그런 B급 공포물일 것만 같아 관람할 생각이 딱히 없었으나 개봉 이후 평가와 흥행 면에서 예상치 못한 성적을 내고 있는 만큼 도전 욕구가 샘솟게 된 이 영화를 관람한 소감은, 일단 박스오피스 1위를 하는 것이 꽤 납득될 만큼 충분히 재미있고 충분히 무서웠다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확실히 정범식 감독은 한국 관객이 어떤 분위기, 어떤 효과에 공포를 느끼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단 생각과 함께.
영화는 일곱 남녀가 CNN이 세계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장소 중 한 곳으로 선정하였다는 곤지암 정신병원을 찾으며 겪는 일들을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그려나간다. 병원장이 환자들을 모두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는 그 정신병원에 찾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자연적 현상을 겪고, 투신자살이나 사고사 등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일종의 괴담이 전해져내려 오는 그곳을 찾은 호러 유튜브 채널 '호러 타임즈'의 멤버들은 곤지암 정신병원 이곳저곳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머지않아 그들 역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겪게 된다.
이런 류의 공포 영화가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누군가가 발견해 보여주는 것으로 가장하는, 이른바 파운드 푸티지 장르로 연출하는 것에 반해 유튜브 공포 채널 '호러 타임즈' 멤버들이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일들을 마치 유튜브 생중계를 시청하는 네티즌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점은 영화의 생동감을 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더불어 호러 유튜브 채널 멤버들이라는 인물 설정 덕분에 페이크 다큐 형식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많고 다양한 카메라가 동원되는 점 역시 흥미롭게 다가온다. 특히 실제 영화의 촬영 장면 중 90% 이상이 배우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인 점과 영화 속 유튜브 채널에서 삽입되는 음악 두 번 정도를 제외하면 공포심을 더욱 유발할 수 있을만한 음악이나 음향의 활용 역시 최대한 배제하고자 한 점도 꽤나 성공한 듯 보인다.
장르 특성상 결코 적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곱 명의 인물이 출연하면서도 이들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낸 점도 흥미롭다. 특히 이들이 남자 넷, 여자 셋의 성비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쓸데없는 러브라인을 집어넣지 않고 오롯이 목적에 충실한 영화라는 점도 제법 인상적이다. 그리고 페이크 다큐 형식의 영화에서 몰입도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배우들이 얼마나 그 상황에 녹아드는가'라고 한다면 이 영화의 일곱 배우들은 대부분이 아직 작품 활동이 극히 적은 신인 배우들임에도 불구 각각의 캐릭터를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며, 그 결과 영화의 몰입감과 긴장감 역시 한층 더 고조된다.
아마 영화가 영화인 만큼 다른 무엇보다도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가장 궁금해할 것 같아 이야기하자면, 최근 몇 년 간 관람한 한국 공포 영화 중에선 가장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공포를 자아내는 연출이 돋보인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별한 무언가가 등장하지 않는 초중반부도 당장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스산한 분위기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던 영화는 작정하고 연출한 듯한 후반부에 이르러 어마 무시한 공포심을 자아낸다. 특히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후반 10분가량은 엔딩 타이틀이 뜨는 순간 온몸에 힘이 다 빠질 정도로 그야말로 압권이다.
더불어 영화를 본 대부분이 영화 전체의 하이라이트라고 손꼽는 감독의 전작 <기담> 속 '어떤 귀신'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후반부의 누군가는 그 유사성에도 불구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며 감독이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어느새 4주기를 맞이하는 세월호 참사를 떠오르게 하는 각종 설정들 역시 인상적이다. 다시 말해 <블레어 윗치>를 시작으로 <파라노말 액티비티>, <R.E.C.> 등 페이크 다큐 호러물이 더 이상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그런 외국 영화를 그대로 답습한 클리셰 덩어리가 아닌 새로운 매력, 새로운 개성을 지닌 호러물이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