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함과 불쾌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스물>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의 신작 <바람 바람 바람>을 관람하였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많은 의미에서 <스물>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적당히 신선하고 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조금은 찝찝하기도 했던 전작의 특징을 그대로 닮은,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든 이병헌 감독이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만큼은 충분히 알게 해 준 느낌이랄까.
영화는 택시를 운행하며 수많은 여성들과 바람을 피워온 남자 석근과 아내밖에 모르는 그의 매제 봉수, 이 두 남자가 매력적인 여자 제니를 만나게 되며 겪는 일들을 중점적으로 그려나간다. 아내 미영을 무척이나 사랑하면서도 8년간 이어진 결혼생활에 조금은 지쳐있던 봉수는 그에게 접근하는 제니와 불륜을 저지르게 되고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그렇게 순수하던 봉수의 위험천만한 하루하루가 시작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포인트로는 단연 배우들의 개성 강한 연기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개봉한 <보안관>에 이어서 다시 한번 능청스럽고 위트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 이성민 배우는 그만의 개성 강한 연기력으로 석근이라는 인물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며, 이전부터 진지함과 코믹함을 오가는 연기를 선보인 신하균 배우 역시 어딘가 엉성하고 어설프기도 한 캐릭터 봉수를 인상적으로 소화해낸다. 발성 탓인지 영화에서는 유독 어색하게 느껴졌던 송지효 배우의 연기 역시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제법 안정적으로 느껴지고, <내부자들>에서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이엘 배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그녀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한다.
그저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영화에 활력을 더해준 것이 배우들의 연기라면, 위트 가득한 대사는 그들의 연기와 어우러져 적잖은 재미를 선사한다. <스물>에 이어 다시 한번 이른바 화장실 유머가 넘쳐나는 와중에도 그것이 마냥 불쾌하거나 찝찝하기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결국은 캐릭터 각자의 개성을 확실히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게 만든 대사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위트 있는 대사와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에도 불구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영화의 소재가 주는 불쾌함때문으로 보인다. 홍상수나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들을 비롯해 불륜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이전에도 충분히 많았고 그것들 중 대부분은 꽤나 만족스럽게 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찝찝함이 다른 작품들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어딘가 불륜이라는 소재를 희화화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며, 결국에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불륜을 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만약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결국 이병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 몹시 궁금해지기도.
인터넷 상에서 몇몇 커뮤니티 유저들을 주축으로 활발한 논쟁(혹은 이상한 헛소리)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 어쩌면 가장 호와 불호가 크게 나뉠 수밖에 없는 영화이며, 아니나 다를까 실제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단적으로 갈리는 듯 보인다. <스물>에 이어 이번 작품 또한 조금은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소재였음에도 불구 결국 캐릭터들의 힘으로 무난한 재미를 선사해주었지만 이병헌 감독의 다음 작품도 이와 비슷한 느낌, 비슷한 소재라면 그때는 과연 지금보다 더 나은 점수를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한 십 년 전쯤 나왔다면, 그때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