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무척이나 잔잔한 분위기가 최대 미덕이자 최대 단점.

by 뭅스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부터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그 영화 <콜럼버스>를 관람하였다. 한국계 미국인인 코고나다 감독이 연출하고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인 존 조와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배우 헤일리 루 리차드슨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마치 전시회를 구경하고 나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감각적이면서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누군가에겐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로, 누군가에겐 굉장히 따분한 영화로 느껴질 가능성도 상당해 보이지만.


영화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소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우연히 만나 교감하며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는 두 남녀 진과 케이시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서울의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진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그 어떤 연고도 없는 도시로 오게 되었으며, 그 도시에서 나고 자란 케이시는 그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약물 중독인 어머니를 두고 떠날 수 없다. 이렇게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콜럼버스라는 도시에 발목이 붙잡힌 두 인물은 건축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기반으로 점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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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가장 돋보이는 매력으로는 눈을 사로잡는 미장센의 향연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추후 진의 아버지임이 밝혀지는 누군가가 쓰러지는 것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건물 이곳저곳을 누비는 한 여자의 동선과 함께 세련된 건물 내부를 비추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이후에도 다양한 건축물들의 외형과 내부를 다른 각도, 다른 시각에서 담아낸다. 애써 건축에 대한 관심을 멀리 하며 살아온 진은 케이시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점차 건축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설명은 마치 미술관의 도슨트처럼 단순히 진에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설명하는 듯이 느껴지는데, 이렇다 보니 바로 옆에 있어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을 영화 속 건축물들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이 영화에는 유달리 참신하게 느껴지는 설정도,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특별한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진과 케이시라는 두 인물을 중점으로 캐릭터들 간의 대화로만 채워져 있다. 그런 점에서 실제로 코고나다 감독이 굉장한 팬으로서 다큐멘터리도 제작했었다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와 유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런 한편 두 남녀 간의 관계가 마지막까지 애정인지 우정인지 모호하게 끝나는 것은 <비포 선라이즈>와는 사뭇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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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특별한 한 방이 없는 만큼 연기력이 돋보이기 힘든 영화이기도 하나 두 주연 배우 존 조와 헤일리 루 리차드슨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낸다. 헤일리 루 리차드슨은 미래에 대한 고민과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지만 때로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의 모습도 간직하고 있는 케이시를 극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연기로 소화해내며, 사뭇 묵직하고 진지한 캐릭터 진을 연기한 존 조 역시 중후한 매력으로 극의 무게감을 한층 더해준다.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의 한국어 연기를 보는 재미는 덤.) 이렇게 누군가는 무게감을, 누군가는 활력을 더해주는 두 배우의 합은 영화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에 크게 한몫하며,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비대칭 속에 균형을 이루는 어떠한 건축물처럼 제법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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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관람했던 터라 지나칠 정도로 잔잔하고 담백한 분위기에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나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위안을, 그리고 어딘가 건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을 낳는 작품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건축을 전공한 이들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볼만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정말 무척이나 조용하고 잔잔하므로 피곤한 상태에서 관람하기엔 굉장히 힘든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진심 어린 충고를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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