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감흥도 선사하지 못한 채 시종일관 찝찝하기만.
유해진 주연의 영화 <레슬러>를 관람하였다. 혹평 일색의 후기들을 보며 이걸 꼭 봐야 할까 하나 싶긴 했지만 '뭐 <챔피언>도 본 마당에'라는 생각으로 관람한 이 작품은, 일단 결론적으로 굳이 볼 필요가 없었던 작품임은 분명해 보인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단 한순간도 최소한의 감흥조차 선사하지 못한 무색무취의, 그리고 더 나아가 숱한 기시감과 설정의 황당함만을 남긴 채 끝나버린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상충된 채 펼쳐진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들이 레슬링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길 바라는 `아들 바보` 귀보와 그의 아들 성웅의 부자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족 드라마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성웅의 친구 가영이 귀보를 좋아한다는 설정에서 오는 독특한 로맨스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펼쳐지는 상황에서 <레슬러>라는 제목에서 기대했던 일종의 스포츠 영화로써의 성격은 저만치 뒤로 물러나버린다.
일단 부자간의 관계에 집중해서 이야기하자면, 결국 이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에서 지겹도록 봐왔던 그 설정, 그 갈등, 그 해소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다. 오로지 아들의 행복만을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귀보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성웅의 성격은 그냥 그 먼 옛날부터 주구장창 접해온 가족 영화의 전형 그 자체로만 느껴진다. 레슬링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당갈>과 비교하자면, 자신이 못 다 이룬 꿈을 자식이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아버지라는 점에선 공통점을 갖지만 그 외 그 인물에 공감하거나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깊이는 현저히 부족해 보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레슬링이라는 소재 자체를 영화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마치 한편의 스포츠 영화로써 일종의 통쾌함을 선사할 것만 같던 제목과 달리 영화에서 결국 레슬링이라는 소재는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 얕게 다뤄질 뿐이다. 그리고 이 연장선 상에서 왜 그렇게 귀보가 아들이 레슬링 선수로 성공하기를, 다시 말해 레슬링이라는 종목에 왜 그토록 열정을 보이는지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며, 성웅이 정말 레슬링이라는 스포츠에 조금의 열정이나 애정 없이 그저 아버지가 바라기 때문에 그 운동에 매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남기고 만다.
그나마 이러한 부분은 두 번째 이야기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가영이 오래전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 성웅의 아빠를 짝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결국 그것이 일단락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저 황당하고 어이없게만 느껴진다. 아마 그 이유는 가영이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더 나이가 많은 친구의 아빠 귀보를 짝사랑하게 된 동기나 과정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툭 던져질 뿐이기 때문이리라. 그런 상황에서 성웅과 가영, 귀보 간의 이상한 삼각관계가 마치 유쾌한 시트콤마냥 코믹스럽게 펼쳐지고 결국 이로 인해 귀보와 가영 가족 간의 갈등까지 심화되고 마니 이 과정 역시 당혹스러움에서 나오는 실소를 유발하는데 그치고 만다.
유해진 배우가 주연을 맡았단 점에서 기대했던, 최소한의 유머 역시 영화는 제대로 선사하지 못한다. 애초에 웃음을 자아낼 만한 요소 자체가 별로 없거니와 그 얼마 안 되는 유머 역시 조금은 과하게 느껴지는 대사들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단 한순간도 유쾌하게 관람하지 못하고 만다. 가뜩이나 가영이 귀보를 좋아한다는 설정 자체가 당황스럽기만 한 상황에서 귀보의 맞선녀 도나 역시 그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상황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려는 설정, 그리고 그런 가운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여자가 맞선 자리에 치마를 입고 오는 게 매너지' 갖은 류의 대사들은 마치 <형>의 어떤 장면을 보며 느꼈던 것과 유사한 불쾌함만을 선사할 뿐이다.
여기에 더불어 김태훈, 김강현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굳이 존재했어야 했을까 싶을 정도로 황당하게 소비되는 점, 성웅의 갈등이 고조된 후반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의 '어떤' 장면의 묘사, 극의 상황과 묘하게 빗나가기만 하는 음악의 이상한 활용 등 이외에도 지적할 만한 단점들이 수도 없이 많은 영화였다고 할까. 그저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 대적하겠다는 각오로 개봉한 한국 영화가 <챔피언>과 <레슬러>라는 사실이 참 막막하게만 느껴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