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과 어니스트>

세상 모든 부모에게 바치는 헌사.

by 뭅스타

로저 메인우드 감독의 <에델과 어니스트>를 관람하였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동화 [눈사람 아저씨]를 그린 동화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레이먼드의 부모 에델과 어니스트의 만남부터 죽음까지 약 50년 간의 삶을 인상적인 화법으로 압축한 작품이다.


실제 레이먼드 브릭스가 등장해 '이 이야기는 부모님의 이야기입니다'임은 밝히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95분의 러닝타임 동안 에델과 어니스트가 만나고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세월들을 차분하고 단조롭게 풀어나간다. 1928년의 런던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우유배달부 어니스트와 메이드 에델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집을 장만해 결혼에 성공하는 과정부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스토리에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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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이 되는 1920년부터 1970년까지의 런던에서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이다. 영화는 어니스트가 매일 읽는 신문 속 기사나 부부가 이곳저곳을 거닐며 직접 마주하게 되는 모습들을 통해 전쟁이 삶에 끼친 크고 작은 영향들까지 그려낸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단 점에서 마치 격동의 시대를 고스란히 옮긴 한편의 역사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아날로그 문명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이 점점 TV, 전화 등 디지털 제품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까지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어 멀리 런던까지 갈 필요 없이, 당장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에델과 어니스트라는 부부의 결혼 생활이 단조롭게 그려지는 중반부의 전개는 수없이 많이 활용되는 페이드 인-아웃 효과 때문인지 조금은 루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단조롭기 짝이 없는 그들의 결혼 생활은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모습 속에 어우러진 유머 덕분에 어느 순간 피식피식 웃음을 짓게 만든다. 변화하는 사회 모습에 격렬히 반응하는 어니스트와 그런 그에게 이른바 팩트 폭행을 일삼는 에델의 대화는 잔잔함 속에 흥미를 더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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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개 이후 어느새 노년이 된 부부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모습은 꽤나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어쩌면 이 마지막이 적잖은 울림을 자아내는 가장 큰 이유는 이전까지 인물들의 삶이 평범하디 평범한 여느 부부의 삶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결국 영화의 후반부는 언젠가 레이먼드처럼 부모를 떠나보내야 할, 그리고 레이먼드같은 아들 앞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 나의 미래를 그리게 만들며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여운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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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생이란 것은 무언가 특별하고 다이내믹한 무언가를 해야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고 단조로울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한 평생 함께 살아가는 그 자체로 한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이러한 메시지가 마치 부모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자식의 그림 속에 담겨있고, 이를 또다시 오래 작업 끝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낸 이 작품은 결국 영화를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이 그 속에 각자의 삶을 투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지 않나 생각해본다. 부모님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해드리고 싶은 영화이자, 나와 같은 세상 모든 자녀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을 듯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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