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의 카메라>

점점 더 솔직하고 정직해져 가는 홍상수의 영화 세계.

by 뭅스타

도저히 시간대를 맞추기 힘들었던 탓에 볼 수 없던 그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를 개봉 3주차가 되어서야 드디어 관람하였다. 이자벨 위페르가 <다른 나라에서> 이후 다시 한번 홍상수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개봉하기만을 손꼽아 온 이 작품은, 홍상수 영화답게 보통의 상업영화와 다른 개성과 매력으로 가득한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출장 도중 부정직하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영화사 직원 만희와 친구의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칸으로 온 고등학교 교사 클레어가 사람들을 만나며 겪게 되는 이들을 그려나간다. 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각각 다른 시기에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며, 이윽고 이 둘이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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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의 순서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완수와 양혜가 클레어의 사진들 속에서 만희를 발견하고 어떻게 그녀 사진을 찍었냐고 묻을 때만 해도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클레어가 만희를 더 먼저 만났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후 만희 역시 클레어의 사진을 보며 어떻게 완수와 만났는지를 물으면서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다시 말해 영화는 서사 순서대로 전개가 진행된 감독의 최근작들과 달리 <북촌방향>이나 <자유의 언덕>처럼 시간의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채 진행되며, 어떤 점에선 단순히 서사의 혼동을 넘어 진실과 거짓의 혼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이 늘 그렇듯 결국 확실한 시간의 순서보다 인물들이 만나며 나누는 대화 그 자체가 더욱 중요시되는 만큼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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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그리고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로 쓰이는 것은 클레어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인물들을 촬영한, 그녀의 카메라이다. 클레어가 찍는 카메라 속 사진들은 머지않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과거의 어느 순간이 되어버린다. 그녀는 그렇게 영화 내내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 찍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완수에게 '내가 사진을 찍은 이후로 당신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말 희한하게도, 영화 속 인물들은 그녀에게 사진이 찍힌 이후로 비로소 솔직해진다. 클레어를 경계하던 만희는 이내 그녀에게 자신의 사정을 속시원히 털어놓고 완수는 양혜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그만 정리하자고 한다. 더불어 갑자기 5년간 함께 일했던 직원 만희를 해고한 양혜는 만희의 집으로 찾아가 그녀를 불러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양혜가 만희를 해고한 사유이다. 양혜는 만희가 더 이상 정직하지 않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그녀를 해고했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도 정직하지 못했던 양혜는 만희를 찾아가 그녀를 복직시키고 그보다 이전에, 완수는 마치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라도 하려는 듯 만희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만희는 연분홍색의 원단을 갈기갈기 찢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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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클레어의 카메라는, 정확히 말해 클레어라는 인물은 영화에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와 대화를 나눈 이들이 비로소 마음 구석에 담아둔 진심을 그 어떤 방법으로든 털어놓고 해소하는 모습은 그렇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 초반부 만희와 만난 완수의 제자가 '사람이 솔직해야 영화도 솔직하게 만들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아마도 홍상수 감독에게 이 영화는 솔직함 그 자체의 작품처럼 보인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번 작품 역시 그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감수하는 한 인간의 자기반성, 그와 함께 함께 비난받는 한 여인에 대한 죄책감의 메시지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인다. 결국 그는 그가 자초한 이 모든 일들을 계속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함으로써 다시 한번 찬찬히 떠올리고 또 떠올릴 것이다. 확실히 이전의 영화 세계와는 다른 국면을 맞이한 듯 보이는 그의 제3막은 그런 의미에서 어딘가 이전보다 더욱 유사해 보이면서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서 김민희라는 배우는 정말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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