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결국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언젠가부터 재개봉에 이어 지각 개봉이 또 다른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상황에서 또 한편의 뒤늦은 개봉작 <루비 스팍스>를 관람하였다. <미스 리틀 선샤인>을 통해 단숨에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떠오른 부부 감독 조나단 데이턴과 발레리 페리스가 2012년에 연출한 이 영화는, 결국 사랑은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특별할 것 없는 주제를 독특한 소재와 스토리를 통해 매력적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번 기회에라도 관람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만큼은 물씬하게 해 준 작품이기도.
영화는 5년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로는 연애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베스트셀러 작가 캘빈이 무척이나 이상한 일을 겪게 되면서 시작한다. 바로 꿈속에 등장해 그에게 다음 작품에 영감을 준 상상 속 캐릭터 루비가 그 앞에 실제로 나타난 것. 이 황당하디 황당한 상황에 극도로 당황한 캘빈은 이내 자신이 꿈꿔온 이상형 루비와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어느 연인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연애 과정에서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하며 그들의 관계는 비틀어져 간다.
소설 속 여자가 실제로 작가의 눈 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군대에서 열심히 읽었던 기욤 뮈소의 소설 [종이 여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작품은 이후 전개에선 기욤 뮈소의 작품과 전혀 다른 이 영화만의 매력을 선사하며 결국 영화가 이 독특한 스토리를 통해 말하고 싶은 주제 역시 확연히 다르다.
캘빈은 꿈속에나 만날 법한 이상형의 그녀 루비와 함께 있는 시간을 무척 뜻깊고 소중하게 여기지만, 머지않아 그는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는 동시에 그녀와 떨어져 있는 것을 괴로워한다. 그런 상황에서 캘빈은 소설을 다시 써 내려가면서 루비가 그가 원하는 그대로 행동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점점 바꾸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루비의 성격을 마음대로 조종하려 하면 할수록 캘빈과 루비는 점점 멀어져 간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과정에서 결코 그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으며,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결국 캘빈의 사랑이 불행을 맞이할 수밖에 없던 것도 이러한 주제를 돋보이게 해준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크고 작은 갈등을 겪음으로써 비로소 관계가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음을, 그리고 더욱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음을 말하는 영화의 주제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의 활약 속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러브 앤 머시>, <유스>, <옥자> 등의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데 이어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선 연출 데뷔작을 선보이기도 한 폴 다노는 그만의 찌질하고 엉뚱한 매력을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선보이며, 개봉을 앞둔 <빅 식>에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는 조 카잔의 통통 튀는 듯한 개성 역시 인상적이다. 특히 조 카잔이 직접 각본을 써내려 간 상황에서 실제 연인이기도 한 두 배우의 연기 합은 더더욱 돋보인다. 더불어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크리스 메시나, 아네트 베닝,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조연배우들의 활약 역시 인상적.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로맨스 영화의 결말은 대체로 뻔한 해피엔딩이며 그런 만큼 결말에 도달하기까지의 스토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중요하다. 비록 결말은 정해져 있을지라도 이전까지의 과정이 매력적이라면, <이터널 선샤인>이나 <500일의 썸머>처럼 시간이 지나도 계속 언급되며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함부로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마지막 순간에는 언급한 두 영화의 결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도 만드는 이 영화 역시 제법 인상적인 로맨스 영화로써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