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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스페인>

여전히 무난하면서도 매력적인 그들의 만담.

by 뭅스타

다시 돌아온 두 남자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의 세 번째 여행기 <트립 투 스페인>을 관람하였다. 시리즈의 시작인 <트립 투 잉글랜드>는 미처 챙겨보지 못했지만 2015년 개봉한 속편 <트립 투 이탈리아>는 꽤 재미있게 본 만큼, 이번에도 그 정도의 재미는 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관람한 이 영화는 정말 딱 생각한 그 정도의 무난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여전히 특별할 것 없이 그들의 만담으로 꽉 채워져 있지만, 왠지 모르게 매력적인 시리즈랄까.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은 이전 시리즈와 정확히 일치한다. 매거진의 제안을 받은 스티브 쿠건이 롭 브라이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이 어김없이 반복되며 이번에는 그 배경이 스페인인 셈이다. 이탈리아 여행 이후 4년 만의 여행에서 그들이 처한 상황은 약간의 변화를 맞이했지만 둘의 입담만큼은 여전하다. 6일간의 여정 동안 이들이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음식들은 그 자체로 군침을 돌게 만들며 주방의 분주한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아내 생생함을 더한다. 또한 이곳저곳을 누비는 그들의 여행은 스페인의 앤티크 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경치를 멋들어지게 그려내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를 샘솟게 만든다. 어쩌면 영화를 보며 '언젠가 저기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적 중 하나라는 점에서 영화의 목적은 확실히 이룬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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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엔 그저 이 두 남자의 입담 대결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특별한 대본이 존재하지 않는 이 시리즈에서 이들의 대화는 실제 그들의 삶을 반영하기도 하고 철저히 픽션에 기반하기도 하는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를 그들의 대화는 무척이나 유쾌하다. 다양한 배우들을 흉내 내며 큰 웃음을 자아냈던 전작에 이어 이번 영화 역시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 니로, 이안 맥켈런 등 수많은 셀레브리티들을 흉내 내는 두 인물의 성대모사가 어김없이 펼쳐지는데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을 흉내 내면서 그들의 특징을 정확히 캐치해 내 꽤 그럴 듯이 모사하는 두 배우의 다재다능함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두 인물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되는 스페인의 역사나 문화 역시 흥미롭게 다가온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겪었던 역사부터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두 배우가 의상까지 갖춰 입고 사진 촬영을 하게 되는 소설 [돈키호테]에 담긴 이야기까지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지식의 향연은 희한하게도 내내 귀 담아 듣게 된다. 어쩌면 이는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 두 배우의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가 선사하는 생생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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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딘가 처연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극 중 스티븐 쿠건은 여행을 즐기는 사이 그의 에이전트는 퇴사하였으며 여행 후반에 합류하기로 한 아들은 여자 친구의 임신으로 여행에 함께 할 수 없게 되었고, 그가 사랑하는 여자 미샤는 다시 남편과 재결합하는 분위기이다. 숙소에 홀로 남을 때마다 씁쓸함과 고독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스티븐의 상황은 마냥 환상처럼 느껴질 수 있을 그들의 여행에 각박한 현실의 문제들이 빠질 수 없음을 시사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여행은 떠나는 그 자체로 한없이 즐겁고 기쁘지만, 여행이 끝난 후에는 좋든 싫든 어김없이 현실로 돌아와야 하고 그 현실을 다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여행을 기약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경험했을 법한 영화의 분위기는 묘한 여운을 자아낸다. 특히 열린 결말로 끝맺은 스티브 쿠건의 마지막은 얼른 네 번째 시리즈가 나와 이 스페인 여행의 후일담을 들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물씬하게 만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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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은 영화 내에서 50대에 접어들며 신인 작가에게 자리를 빼앗기기도 하고 자녀들을 돌보며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도 처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50대가 뭐든 할 수 있는 황금기라고 말한다. 언덕을 오르거나 자전거를 탈 때마다 다른 이들에게 뒤쳐지고 숨을 헐떡이지만 꿈 많은 소년처럼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장난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나에게도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만드는데, 바로 이 점이 이 시리즈에 계속 이끌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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