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전>

그 누구의 행동도 공감할 수 없을 때의 당황스러움.

by 뭅스타

석가탄신일 특수를 노리고 개봉한 이해영 감독의 신작 <독전>. 꽤나 스타일리시한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언론시사 이후 평가가 좋지 못한 데에서 온 우려가 공존한 상태에서 관람한 이 영화는 뭐랄까, 극 중 전개가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이 없을 정도로 스토리에 몰입하기도, 캐릭터에 이입하기도 힘든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결국 영화가 남긴 것은 <골든 슬럼버>나 <7년의 밤>이 그러했듯 '분명 원작은 이렇지 않을 것 같은데'라는 확신뿐.

영화는 거대한 마약 조직의 리더이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이선생'을 잡기 위해 형사 원호와 화재 속에서 살아남은 조직원 영락이 힘을 합치며 겪게 되는 과정들을 그려나간다. 이선생을 잡겠다는 목적 하나로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과 마약 조직 임원 박선창 등 여러 인물들을 속고 속이며 펼쳐지는 그들의 합동 작전은 전개가 진행되며 크고 작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ㄷㄷㅈㄷ.jpg


겉보기에 영화는 재미를 위해 갖춰야 할 것은 골고루 갖춘 듯하다. 마약 조직 일당을 잡기 위한 형사와 그 팀원들의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선사하기는 해도 그것이 기본적으로 중간 이상은 해주었던 만큼 흥미롭게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들며, 최소한 서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초반 전개만큼은 이 기대를 더욱 높여준다. 더불어 몇몇 장면에서의 인상적인 촬영이나 위기 상황 때마다 긴장감을 고조시켜주는 음악의 활용 또한 돋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오로지 스토리만 보자면 도무지 몰입하기 어려운 상황들의 연속처럼만 다가온다. 영화를 보다 보면 대체 왜 원호가 저런 방법까지 동원해가면서 이선생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당장 원호 역을 연기한 조진웅 배우조차 기자간담회 당시 "왜 원호가 저렇게까지 가는 거지?"라는 자문을 했다는 것을 보면, 관객들이 캐릭터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에 이입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언가도 선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더불어 원호가 다양한 인물들을 형사라는 그의 정체를 숨긴 채 만남으로써 위기를 맞기도 하고, 애써 그 위기를 빠져나오기도 하는 과정은 만나는 인물과 배경만 다를 뿐 이러한 전개의 연속은 금방 피로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호텔에서 진하림과 박선창을 연이어 만나는 초반부 시퀀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위기 상황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선사할 뿐이다.

ㅂㅈㄷㅂ.jpg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단연 결말이다. 영화는 극후반부에 이르러 마치 비장의 무기라도 되는 듯한 설정을 내놓는데, 문제는 이 설정이 영화를 중간쯤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거나 충격적이기보다 그저 황당하고 작위적으로만 느껴진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 후반부의 설정이 드러난 후 다시 영화를 처음부터 되짚어보면 '그럼 대체 그때 왜 그런 거지?' 하는 의문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제대로 설명하지도, 설명되지도 못 한 상황에서 오로지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하는 데에 급급한 무리수처럼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나름 인상적이다.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 자체가 원체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만큼 마냥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을지라도 조진웅, 류준열, 김주혁, 박해준, 차승원 등 쟁쟁한 배우들은 그들이 맡은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소화해낸다. 이들 외에 진서연, 서현우, 정준원, 정가람, 이주영 등 몇몇 조연급 캐릭터들 또한 각자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김성령, 강승현 등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큰 편에 속하는 두 여배우는 극 중에서 제대로 활약을 펼칠 여유도 얻지 못한 채 그저 소비되고 만다. 특히 원호가 이끄는 마약팀의 유일한 여형사 소연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듯 보여 '이럴 거면 굳이 왜?'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ㅌㅊㅍㄴㅇ.jpg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그 누구에게도 공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곤욕스러운 123분의 관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쩌면 '독한 자들의 전쟁'이라는 영화의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이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영화에 15세 관람가 판정을 한 영등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버닝>이 18세 관람가인데 이 영화가 대체 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트립 투 스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