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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1967년의 디트로이트, 그리고 2018년 현재의 미국.

by 뭅스타

지난해부터 개봉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온 그 영화 <디트로이트>를 관람하였다.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혹은 출연배우가 누구인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캐서린 비글로우가 연출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했던, 아니 봐야만 했던 이 영화는 정말 간단히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그저 그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장르가 캐서린 비글로우 그 자체인 또 한 편의 영화였다고.


영화는 오로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경찰들의 공권력 남용에 대항하고자 흑인들이 대규모의 폭동을 벌인 1967년의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한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참혹한 나날들의 연속에서 가수의 꿈을 갖고 있는 소년 래리와 그의 친구 프레드, 식료품 가게의 경비 맬빈,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고국에 돌아온 퇴역 군인 폴, 그리고 여름을 맞아 디트로이트로 놀러 온 두 소녀 캐런과 줄리까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알제 모텔에 모이게 된 이들은 그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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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펼쳐지는 오프닝 시퀀스만 해도 조금은 생소한 느낌을 선사하던 영화는 이내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특유의 색깔로 서서히 물들어간다. 이라크에 복무하는 폭발물 제거반 EOD의 이야기를 그린 <허트 로커>로 아카데미 시상식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한 여성 영화인으로 우뚝 서고,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CIA 요원의 10년간의 사투를 그린 <제로 다크 서티>로 뛰어난 연출력을 다시 한번 입증한 바 있는 그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나칠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연출로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사실감을 자아낸다. 더불어 두 전작이 그러했듯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극도의 압박감과 묵직한 여운을 선사한다.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는 19세기를 다룬 <노예 12년>, 이 영화와 비슷한 시기를 다룬 <셀마>, 비교적 최근의 미국 사회를 그린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등 어떤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를 떠나서도 셀 수 없이 많이 제작되어왔다. 이는 인종차별 문제는 저 먼 과거에도, 1900년대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오늘날 뉴스를 통해 접하는 사건들만 봐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영화 <디트로이트>는 단순히 '과거'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를 영화인지 실제인지 착각할 정도로 현실감 있는 연출을 통해 또 한 번 인식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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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틈이 없을뿐더러 나 역시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그 잔혹한 현장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시종일관 자아낸다. 특히나 영화의 중반 40분가량을 차지하는 알제 모텔에서의 시퀀스는 마치 <제로 다크 서티>의 마지막 30분이 그러했듯 캐서린 비글로우라는 감독이 얼마나 뛰어난 연출가인지를 제대로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이 뛰어난 연출은 감독의 두 전작에서부터 함께 작업해온 마크 볼의 시나리오, <허트 로커>, <캡틴 필립스> 등에서도 생동감 넘치는 촬영을 보여준 베리 애크로이드의 핸드헬드 촬영과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여기에 어느 누구 하나를 주인공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각의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낸 존 보예가, 알지 스미스, 안소니 마키 등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오며 히 극도의 분노를 자아내는 경찰 필립을 연기한 월 폴터의 연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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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이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관객들이 자연스레 감정적으로 이입될 수밖에 없는 집단들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 반대되는 집단 역시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그녀는 숱한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모으고 모은 사실 그대로를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 팩트를 목격함으로써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의도한 메시지를 깨닫게 만든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인종차별 이슈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과 다른 이 영화만의 개성을 갖게 하는 동시에, 캐서린 비글로우라는 감독이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들고 돌아올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과연 지금의 미국은 50년 전의 디트로이트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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