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게 어긋나 버리는 후반 30분의 아쉬움만 제외하면.
감성적인 연출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사 아토의 신작 <홈>을 관람하였다. 아토의 첫 번째 장편 <우리들>은 2016년 최고의 한국영화로 꼽을 만큼 좋았지만 지난해 개봉한 <용순>은 조금도 공감되지 않는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아쉬움을 남긴 바 있는 만큼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관람한 이 영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잔잔하고 서정적인 연출로 나름의 만족감을 선사해준 작품이었다. 비록 결말로 향하면서 조금은 삐끗해버리고 마는 것이 흠으로 남기는 하지만.
영화는 보험판매 일을 하는 엄마와 배다른 동생 성호와 함께 살아가던 준호가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로 엄마가 그녀와 불륜 관계에 있던 남자의 배우자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고 의식불명 상태에 놓이게 된 것. 이 상황에서 성호의 친아빠 원재가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해진 성호를 데려감으로써 준호는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남겨지게 되고, 그런 그를 안타깝게 여긴 원재는 피가 섞이지 않은 준호 역시 가족처럼 대해준다. 돌고 돌아 드디어 새로운 집에서 행복한 나날을 맞이하게 된 준호이지만 그런 그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시작부터 유부남과 불륜 관계에 있던 엄마, 그런 문제로 이혼하게 된 준호의 친아빠 등 다소 자극적인 설정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조금은 당혹스럽게 느껴지던 영화는 이내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준호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학교에서는 친구 하나 없이 왕따를 당하고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던 엄마마저 떠나간 상황에서 준호가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 비로소 웃음을 되찾게 되는 과정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준호의 행복에는 엄연히 끝이 존재한다. 의식불명 상태로 병실에 누워있는 원재의 아내가 의식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준호는 또다시 그 집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관객들도, 준호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만큼 새로운 가정에서 밝게 살아가는 준호의 모습은 비록 그는 환히 웃고 있음에도 어딘가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게 준호라는 캐릭터에게 감정적으로 동요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인물을 연기한 이효제 배우의 연기가 크게 한몫하는데 마치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를 떠올리게 할 만큼 너무나도 가혹한 환경에 놓여있음에도 제대로 감정을 폭발하지조차 못한 채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그의 연기는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그저 관계가 다를 뿐 준호만큼이나 복잡한 상황에 처한 또 한 명의 인물 원재 또한 그를 연기한 허준석 배우의 호연으로 더욱 캐릭터의 힘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독이 많은 영향을 받았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조금 더 강하게 몰아붙일 수 있을 상황에서도 장면의 묘사나 음악 모두 한껏 절제하고 이를 통해 더더욱 상황의 안타까움과 쓸쓸함을 극대화하는 등의 연출 방식은 고레에다의 작품 방식과 유사하게 느껴지면서 생각지 못한 수작을 발견한 듯한 기분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제대로 엇나가고 마는 후반 30분가량의 전개는 더더욱 아쉽기만 하다. 후반부에 이르러 준호를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고 폭력적인 상황으로 내몰게 하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이제까지 잘 쌓아오던 장점마저 무너뜨리는 효과를 낳고 만다. 절제가 가장 큰 미덕으로 느껴지던 영화가 조금 더 큰 여운을 선사하기 위해서 택한 듯한 상황 설정들이 도리어 고개를 갸우뚱하게만 만든 느낌이랄까. 어쩌면 더욱 먹먹한 여운을 자아낼 수 있었을 엔딩 시퀀스도 바로 그런 점 때문에 큰 감흥을 선사하지 못하고 만다.
어쩌면 이전까지 무난했던 영화가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굉장한 한 방을 선사할 때보다 이전까지 잘 쌓아오던 영화가 급격히 무너질 때 영화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후반부는 참 안타깝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연출력을 계속 이어간다면 차기작에서는 더욱 좋은 성과를 보여줄 감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만큼은 확실히 갖게 되며 그렇기에 김종우라는 감독의 앞으로의 행복을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