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를 나서는 순간 함께 끝났어야 할 시리즈.
따끈따끈한 금일 개봉작 <메이즈 러너 : 데스 큐어>를 관람하였다. 하이틴 판타지 영화 중에서 국내에서도 흥행하는 유일한 시리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선 두 편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던 만큼 이번에도 기대보단 걱정이 앞선 상태에서 관람한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해, 가뜩이나 기대에 못 미쳤던 이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낮은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남은 것이라곤 143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갈고닦은 인내심뿐.
영화는 트리사의 배신으로 민호가 위키드 조직에게 잡혀가게 된 전편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에서 몇 달이 흐른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토마스를 중심으로 한 러너들은 민호를 구출해내기 위해 애쓰지만 위키드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항체를 가진 민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결국 토마스 일행은 위키드 본부가 위치한 최후의 도시로 향하게 된다.
적잖은 예산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인 만큼 그 어떤 감흥이라도 전달되어야 할 상황에서 영화는 시종일관 무미건조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아마도 이 이유는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과도 큰 연관이 있어 보인다.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빌런을 무찌르기 위해, 혹은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면 이번 영화의 목적은 한결같이 그저 친구를 구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목적이 갖는 무게 자체가 비교적 가볍게 느껴지다 보니 그들의 여정에 온전히 몰입하기가 힘들었달까.
아니 어쩌면 그 목적 자체가 영화의 재미에 크게 좌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직 자신의 가족을 구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테이큰>, <샌 안드레아스>, <다이 하드 4> 등의 영화도 이보다는 몰입감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영화의 궁극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면 결국 답은 한 가지에 이른다. 주인공 일행이 어떤 위기에 몰렸을 때 이를 너무나도 쉽게 모면한다는 것.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토마스 무리에게 각종 시련과 고난을 던진다. 그리고 이 시련에 맞서 주인공 일행은 시리즈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정말 한없이 달리고 또 달린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만한 위기에 내몰렸을 때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조력자의 도움으로 이를 빠져나오는 패턴이 내내 수없이 반복된다. 그렇다 보니 결국 그들이 대략 여섯 일곱번째 위기를 맞이할 쯤이면 '뭐 또 누가 나타나서 구해주겠지'라는 생각만 하게 될 뿐이랄까. (그리고 심지어 정말 누군가가 나타나서 구해준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황당한 장면을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필' 그 밑에 물이 있다는 것이겠지만.
더불어 인물들의 행동 역시 어딘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기만 한다. 우리의 주인공 토마스는 제아무리 다수가 위험에 처해 있어도 그가 그토록 재회하기를 원하는 단 한 명의 친구가 아직 적의 소굴에 있다면 다수의 위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계속 위기를 자초하고 토마스의 친구들은 그렇게 무모하기만 한 토마스를 참 쉽게 따르고 도와준다. 심지어 2편 마지막에 동거 동락한 무리들을 쉽게 배신하며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던 트리사가 결국 다른 위키드 직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음에도 불구 옛정을 발휘해 그녀에게만큼은 무한한 애정을 쏟는다.
이런 전개의 반복은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친구들의 뜨거운 우애를 원 없이 지켜보는 것으로 끝맺고 만다. 눈물을 짜내는 데에 모든 것을 건 국내 신파물에서나 들을 법한 매우 감성적이고 애잔한 음악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물에서 이토록 주구장창 듣게 될 줄이야.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지난 2015년 2편을 관람한 직후 '미로를 나서면서 시리즈만의 개성도 함께 두고 나왔다'라는 평을 남겼었는데, 이번 3편까지 보고 나니 정말 이 시리즈는 미로에 있었을 때가 전부였단 생각이 들게 된다. 의욕 넘치는 주인공 토마스는 결국 시리즈 마지막까지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