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버스에 내려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툭 하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툭. 처음 몇 번 휘날린 빗방울은 바람결에 흩어져 '비가 오려나?'라는 정도의 생각으로 그치지만, 이내 다시 한 방울 툭. 그러다 투두둑. '곧 비가 쏟아지겠구나, 뛰어야겠다.' 분명 이런 존재감을 가진 빗방울이 있다. 그래봤자 빗방울이겠지만 폭우의 존재감을 드리운 빗방울. 나를 달리게 만드는 빗방울이 있다.
이마에 떨어진 빗방울 한 방울에 그렇다면 나는 어떤 존재감을 가진 사람일까 하는 물음이 비처럼 퍼져나간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존재감을 가진 사람일까?
성인이 된 이후 나는 너무도 자주 나의 평범함에 놀라고 만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내가 평범한지를 깨닫는 일과 동일한 건지. 단순히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했던 사람이 이제는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 나는 반딧불 가사 중-
사실 부끄럽게도 어린 시절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간절히 갈망하지 않아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얻었고, 원하는 100%를 가질 수는 없더라도 얼추 비슷한 성과를 얻어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만족의 기준이 그리 높지 않은 성향 탓인지도.
어찌 됐건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던 빛나는 별이 아닌 개똥벌레였다는 나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서며, 그저 흩날리는 빗방울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나를 인정하며 누군가는 괴로워하고 누군가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진정한 삶을 시작한다.
사실 지난 5월쯤 상단의 글을 물 흐르듯 술술 작성했으나 여전히 같은 물음을 되뇌던 나는 글을 마무리짓지 못한 채 12월을 맞이했다. 그러다 우연히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를 듣고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사랑하게 되는 개똥벌레에 크게 공감했고, 오늘 새벽 문득 나의 글을 다시 떠올리며 내가 어떤 존재감을 가진 빗방울이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은 재촉하는 빗방울이든, 폭우를 예견하는 빗방울이든, 훅훅 털어내고 마는 빗방울이든, 우리 모두가 비라는 사실은 변함없지 않은가.
영원히 내리는 비는 없다. 그저 하늘에서 왔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갈 때까지 대지를 적셔 만물이 자라게 하는 본연의 소임을 다하면 될 뿐. 각자의 빗방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비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모두가 그렇게 내리고 있다. 나는 이제 이 짧은 시간을 온전히 감사하며 제대로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하지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