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의 아픔,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길을 찾겠지
인간은 과거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기본적으로 '그럼에도 나아가야지'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때때로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어떠한 사건은 고스란히 상흔을 남기고 평소에는 아문 듯, 잊은 듯 하지만 그때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그때로 돌아가고야 만다.
몇 개월 전 꿈에 타임리프를 하는 송혜교, 박신양 주연의 드라마 전반부가 갑자기 휘몰아쳤다. 사건의 전말은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면 과거로 돌아갔다 현재로 복귀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평온히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 속에서 타임리프는 처음에는 과거를 오가는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지만, 점점 이야기는 과거의 어떠한 일련의 사건으로 좁혀진다.
그리고 펼쳐진 전반부 클라이맥스! 남주인공이 총부리를 겨누고 여주인공의 손목을 낚아채며 대화 좀 하자고 끌고 간다. 그를 말리는 여주인공의 친구 A에게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친구임에도 평소 자신을 흠모하던 친구 A의 실상을 폭로하며 팩트공격을 퍼붓는다.
그 사이, 어느새 높은 난관 위로 올라간 여주인공이 클로즈업되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어지러운 시선과 함께 몸을 내던진다.
장면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 여주인공과 친구 A에게로 전환된다. 마치 과거의 순간을 다시 겪는 듯 격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며 여주인공은 말한다.
나는 그때 다시 태어나지 못했나 봐.
그 대사를 마지막으로 나 역시 잠에서 깼다. 두근대는 심장을 잠재우며 꿈의 후반부 이야기가 궁금한데 다시 꿀 수는 없겠지?라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결국 인간은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라는 질문에 다다랐다. 그들의 사연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죽음으로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는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사에서 그녀가 영원히 품고 가야 할 '시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쩌면 꿈속의 사람들을 타임리프를 하게 만드는 말과 행동은 각자의 마음에 새겨진 상흔들이 아니었을까? 마음의 상흔은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갈 타임리프의 능력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타임리프는 2017년에 갇혀있다. 요즘 시절로 이야기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신체적 이상증상도 생길 만큼 힘들었던 암흑기 시절이다. 벌써 8년 전 일임에도 그 비슷한 상황만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리며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한동안 언제쯤 이 타임리프를 완전히 깨부술 수 있을까, 이것이 영원히 극복하지 못한 마음의 상흔으로 남는 건 아닐까 염려했다.
다행히 나는 이 물음의 해답을 시간과 관계에서 찾은 것 같다. 물론 아직도 2017년 어디쯤 해결하지 못한 매듭을 지으러 갈 것처럼 다시금 과거로 돌아갈 때가 있지만 다행히도 뾰족했던 일들을 무디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싶다. 기쁨도 슬픔도 시간이 가면 희미해지니 흐르는 세월 따라 자연히 무뎌진 부분도 있고, 그 사이 쌓인 나의 여러 경험들이 당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변의 건강한 관계를 통해 나의 상처를 계속 들여다보고 드러내고 이해받고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오늘 또 타임리프를 한 사람이 있다면-
마음 한편 갇혀버린 시간 속에서 맴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만의 길을 찾아 그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시간의 미덕을 기대하며, 인간의 망각을 믿으며.
* 사진은 그 시절 내가 울고 울고 또 울던 추억의 족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