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짧은 물음에 내 머릿속에는 대답 대신 더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고민 끝에 내뱉은 나의 질문은 지금 생각해봐도 어리숙하기 짝이 없다.
혹시 운포가.. 운반비 포함이라는 뜻인가요?
첫 중고거래를 앞두고 찾아온 번민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구매자 마음대로 깎은 5천 원, 생각지도 못한 운반비까지. 이걸 받아들여, 말아? 팔고는 싶은데 두 조건 모두 받아들이자니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다.
"아.. 거의 새 상품이라서요ㅠㅠ 대신 첫 거래라서 5천 원은 할인해드릴게요^^"
아쉬움을 담은 눈물 이모티콘과 친절함을 한껏 끌어올린 웃음으로 딜을 걸어보았다. 결과는 읽씹(읽고 씹기). 첫 거래 불발에 마치 헤어진 연인의 바짓가랑을 붙잡고 싶은 심정보다 더 큰 찌질함으로 딜을 건 나를 탓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아쉬워? 그렇게 '당근 마켓 2주 안에 40만 원 벌기'라는 오기가 발동했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며
무소유 정신을 널리 퍼트린 법정 스님
그리고 비움을 실천하는 당신이 되어 사실은 부가수익을 얻고 싶은 나.
목적은 다르지만 행(行)의 결은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은가? 성공적으로 비우고 채우기 위해 과한 열정을 쏟아보았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1. Concept
나는 주로 남편의 옷, 신발, 모자 등을 팔 계획이었다. 중고마켓의 특징을 살려 비우는 중이라는 뜻의 비우밍(Bium-ing)이라고 네이밍을 하고, 판매상품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옷걸이 심벌을 사용해서 프로필을 만들었다. 이것은 나의 상품에 관심을 가져 프로필을 클릭한 사람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2. 상품
원래 상품이 판매의 본질 아니겠는가. 온 집 안을 뒤엎어 열심히 상품력이 있는 옷가지들을 찾아냈다. 첫 째는 브랜드 인지도가 있어야 할 것. 아무래도 중고시장에서는 고가의 브랜드를 저렴하게 사는 것을 선호한다. 두 번 째는 시즌에 맞는 상품일 것. 굳이 중고를 계절을 앞당겨 미리 살 이유는 없다. 지금 사서 바로 입으면 그만이다. 세 번 째는 상품의 컨디션이 좋을 것. 중고임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사용감이 너무 많거나 하자가 있다면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판매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새 상품, 미개봉 상품도 많이 올라오는 편이라 상품의 컨디션은 가격만큼 중요하다.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상품 / 시즌에 맞는 상품
3. 프로모션
가격제안 불가라고 설정해놨음에도 계속해서 찔러보는 사람들. 그때마다 깎아줘? 말아? 고민의 연속이 심히 고달팠다. 그래서 나는 원칙을 세웠다. 택배비는 무조건 별도, 대신 2개 이상 구매 시 총액의 5% 할인을 적용해준다. 내가 업로드한 다른 상품들을 둘러보게 하는 효과가 있고, 객단가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묶음 할인을 포기한다면 택배비를 부담해주기도 한다. 한 번에 여러 상품을 파는 것이 내게도 효율적이므로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대처한다.
4. CS
판매자의 매너 온도와 후기는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키가 된다. 다양한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는 사기꾼 비매너 판매자들도 많다. 특히나 코로나로 직거래가 껄끄러웠던 시기에 택배거래를 위한 선입금이 마음 편할 리 없다. 이런 구매자들의 걱정을 잠재워줄 수 있는 건 판매자의 지난 거래 후기다. 좋은 거래 후기는 어떻게 하면 쌓일까?
첫인상은 상세한 상품설명과 깨끗한 이미지 컷에서 시작된다. 기본적인 사이즈, 색상, 코디 추천 등 제품 구매 시 알아야 할 사항들을 자세히 적어놓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거래 채팅을 할 때, 친절한 말투 못지않게 빠른 응답이 중요하다. 읽음 표시가 사라진 이후 기다리는 1분은 전자레인지 3분보다도 길다. 마지막으로는 구매를 결정했을 때, 깔끔한 제품 포장 및 작은 서비스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셔츠는 예쁘게 접어 OPP포장을 했고 작은 비타민과 함께 기분 좋은 메모를 남겨두었다. 중고거래지만 새 상품처럼 받아보라는 마음에서였다.
* 실제로 받은 고객후기
5. 그 외의 TIPS
* 출퇴근 시간/잠자기 전 시간에 업로드하기
많은 상품이 올라오기도 하는 시간대이지만 제품 구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간이다.
* 키워드 알람 활용하기
사용해보니 나를 포함하여 키워드 알람 설정을 해놓는 유저가 많은 것 같다.
* 끌올(업로드한 지 오래된 상품을 끌어올리는 기능) 활용하기
하트가 많은 상품을 끌올하여 다른 상품도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419,000원. 내가 당근 마켓으로 2주 만에 번 돈이다. 적은 돈일 수도 있지만 내가 부지런 떨지 않았으면 여전히 옷장 속에 묵혀져 있었을 돈이라는 생각에 뿌듯했다. 또 이 작은 목표는 단조로운 일상에 재미를 더해줬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더 큰 도전을 만드는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나는 이제 스마트 스토어, 위탁판매, 구매대행 등 전자상거래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먼 미래에 유명 유투버 신사임당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일상의 작은 목표는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기분 좋은 자극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