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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동 Nov 28. 2021

나는 왜 쉬지 못하는가

삶 #8. 피로사회 - 한병철

요즘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회사 다녀와서 저녁 먹고 누워서 뒹굴대다가 잠들고 나면 뭔가 제대로 쉰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핸드폰이 원인이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하루 몇 시간씩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미친 듯이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있고 노곤노곤한 상태다. 내겐 뭔가 보상이 필요하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야식이나 맥주. 또는, 머릿속에서 일 생각을 비우고 일로부터 떨어져 있기 위해 핸드폰을 켠다. 유튜브 프리미엄. 월 8,690원. 넷플릭스. 왓챠. 쉽고 빠르고 확실한 즐거움이다. 고양이 영상이 되었든, 요리 영상이 되었든, 게임 영상이 되었든 10분~15분 길이의 영상 몇 개 보다 보면 금세 잘 시간이 된다. 슬슬 눈이 감긴다.      


그렇게 핸드폰이 습관이 된다. 걷거나 지하철, 버스를 타는 등 이동하는 중에도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켠다. 카페에서 책을 읽을 때도, 친구들을 보고 있을 때도, 침대에 누워서도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본다. 근데 자꾸 핸드폰 잠금을 해제해도 딱히 볼건 없다. 봤던거 보고 또 보고... 내가 정말 원해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 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 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 원천과 처리 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원래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보던 핸드폰이 나의 모든 심심함을 앗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게 문화를 발명하고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함은 아니라도, 심심해야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텐데, 심심할 틈 없이 너무 쉽고 빠른 즐거움을 정보의 바다에서 얻을 수 있다 보니 그럴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에 적응하느라 그렇다고, 회사 다녀오면 피곤하다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던 영어, 골프, PT 등등을 할 시간에 그냥 나는 핸드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고 있지도 못했다. 뇌가 휴식하기 위해서는 심심해야 한다. 자극으로부터 벗어나서 생각을 멈춰야 한다. 나의 주말은 진정한 휴식이 아닌 과잉 주의와 탈진이었다.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신의 부재 상태, 천박성은 "자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 자극에 대해 아니라고 대꾸하지 못하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즉각 반응하는 것,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이미 일종의 병이며 몰락이며 탈진이다. 여기서 니체가 표명하는 것은 바로 사색적 삶의 부활이다... 마구 밀고 들어오는 자극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며, 시선을 외부의 자극에 내맡기기보다 주체적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길을 걸을 때조차 걷는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늘과 낙엽을 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는 것, 얕고 빠른 자극에 저항하지 못하고 즉각 반응하는 것. 그러므로 한 순간도 자극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는 것.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탈진하는 것. 이것이 요즘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러한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내가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들여다봐야겠다.      


삶은 순간의 누적인데, 내 삶의 미분이 핸드폰을 보는 순간들이라면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벼운 자극에 하루에 몇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그럼 이게 평생 지속된다면 나는 인생의 몇 년을 날리는 것인가?      

핸드폰 사용습관을 시작으로 나는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고, 무엇에 시간을 쓰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 시간 사용/좋은 습관은 무엇인지, 나쁜 시간 소모/나쁜 습관은 무엇인지 정리해봤다.

     

좋은 시간 사용 / 좋은 습관      

책 / 운동 / 친구, 가족, 여자친구와의 시간 /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확보 / 아는 맛 안 먹기 /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등등....      

나쁜 시간 소모 / 나쁜 습관      

습관적인 핸드폰, 유튜브 / 야식 / 과식/ 먹고 눕기, 누워서 먹기 / 카페인 4샷 이상 먹기 / 앉아서 장시간 다리꼬기 / 일어나서 또는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 보면서 꾸물대기 / 말 끊기 등등...     


습관이라는 것이 바꾸기 쉽지는 않다. 적어만 놨다고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 걸음씩 바꿔나가면 약간은 나아지지 않을까. 시작이 반이니까.     


요즘 내 삶의 속도를 되찾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내 삶의 속도를 되찾는다는 것은 곧 내 삶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진정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내 삶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자유롭지 못하게 살아가도록 억누르는 수많은 위협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습관적인 핸드폰 사용으로 인한 과잉 주의와 소진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세상 사람들의 눈치와 비교로부터 자유로운가? 잘해야 한다는 압박과 경쟁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불필요한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세상이 흘러가는 속도에 억지로 맞춰가거나 관성대로 살아가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가장 편한 속도로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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