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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동 Aug 26. 2021

욕심의 무거움에 대하여

삶 #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1. 완성된 인간

작년의 나는 내 자신이 어느정도 완성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스스로 정의할 수 있었고, 그걸 얻기 위해선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의 생각과 행동에 자신감이 넘치고 내뱉는 말에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좀 건방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인생에서 경험한 것보다 경험해야 할 것이 훨씬 많이 남아있는 27살짜리가 마치 인생 통달한 72세 할아버지마냥 말하고 다녔으니. 올해 새로운 경험들이 해일처럼 밀려오면서, 작년까지만 해도 가졌던 많은 확신들이 깨지거나, 흔들리거나, 강화되고 있다.


나는 주기적으로 이처럼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가 도로 잃어버리는 경험을 해왔다. 내가 인생에 대해 안다고 자부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중2, 고1, 대학교 졸업 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마다 인생은 참 쉽고 편했는데! 할 일 다 끝낸 주말과 같은 그 안정감, 또는 세상을 내려다보는듯한 만족감. 나는 인생의 진리를 통달했다! 하지만, 매번 하나의 문을 열고 새로운 챕터를 시작했을 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 정의해왔던 '나'는 흔들려 무너지고 새로운 토대를 쌓아 새로운 인간을 건설해나가야 하는 순간이 곧 찾아왔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첫 직장을 가지고, 부모님의 이혼을 겪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의 20대의 지금까지 전부보다도 압축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인생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작년과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선지, 확신에 가득 차 말할 수 있었던 작년의 '나'는 이제 없다.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글쎄. 보류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내 삶을 위해 어떤 선택이 좋을지. 다시,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또 하나의 문을 열기 위해 끙끙대고 있다. 어쩌면 인생의 과도기인지도 모르겠다.




2. 직장의 의미?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르고,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된 생각이 있다. 노동소득보다는 자본소득이다. 직장보다는 그 이외 시간의 행복이 중요하다. 직장에서의 승진과 커리어에 목매지 말고 적당히 흘러가듯 지내면서 재테크에나 신경 쓰자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긴 하다. 직장 구하기도, 결혼하기도, 집사기도 너무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갑갑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승진이니 이직이니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뭐가 달라질까? 몇십년 모아도 아파트 한 채 못 사는데! 옆팀 누구누구는 갭투자해서 몇억 벌었다더라, 옆팀 누구누구누구는 코인해서 얼마 벌었다더라. 열심히 일할 의욕을 꺾는 사회다. 하지만 내 생각에 회사가 인생을 마치 보장해줄 것처럼 직장에 삶을 갈아넣는 과거의 삶의 방식이 문제기는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행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이비 진화심리학에 근거해 말하자면, 사냥하거나 채집하거나 아이를 돌보지 않고 매일 잠만 자도록 인간의 두뇌와 행복이 프로그램되어 있을까? 존을 위한 과제를 하나씩 클리어해나가면 행복을 느끼고 지나친 나태함은 불안함을 느끼도록 인간의 뇌는 진화하지 않았을까. 내가 오늘 맡은 할 일을 책임을 다해 해냈다는 그 충족감이 인간에게는 필요하다. 내 스스로 벌어 내 스스로 먹고산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대단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로또가 한 열 번 당첨되어서 뭐 건물주가 되어서 놀고먹어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더라도 나는 뭐가 됐든 일을 할 것 같다. 좀 더 편한 직장을 선택하긴 하겠지. 그리고 노는게 좋기도 하지. 근데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설탕이 달다고 음식에 설탕만 잔뜩 뿌리면 너무 달아서 물린다. 소금도 간장도 적당히 들어가야 단짠단짠하고 감칠맛도 더해진다. 주말의 휴식이 달콤하기 위해서는 주중에 열심히 일을 했어야 한다. 직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긴 하지. 연인, 가족, 친구, 취미 등등 인생에 중요한 것들은 너무 많다. 그리고 남들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자원을 배분하는 균형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근데 나는 아무튼 그렇다. 그래선지 집값이 뛰든 말든 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든 여전히 나는 직장에서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3. 첫 사회생활

대학교를 졸업하고 2020년 12월 28일부터 어떤 회계법인을 첫 직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요즘 새로운 직장에서 계속해서 적응해가면서,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하지만 시즌을 한 번 보냈을 뿐, 채 1년도 되지 않았고, 여전히 나는 막내다. 모르는 것도 어려운 것도 여전히 너무 많다. 회계법인 헌내기의 간략한 소감. 1. 일이 진짜 많다. 일 하나를 끝내면 새로운 일이 계속해서 생기고, 여러 클라이언트의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2. 매년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된다. A가 익숙해지면 B를 새로 맡게 되고, B가 익숙해지면 C를 하게 된다. 클라이언트도 매년 새로 맡게 되다 보니 매년 새롭고 좀 더 어려운 업무에 적응해야 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3. 업무의 계절성이 강하다. 널널할 때는 살만한가 싶다가도, 일이 몰리면 미친 듯이 일이 몰린다. 그러다 보니, 일에서 오는 압박감이 있다. 일을 잘하고 싶다. 근데 여전히 너무 어렵고, 모르는게 너무 많다. 일에 대한 욕심을 아직 내 경험과 능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몰려오는 일을 쳐내다가 수박 겉핥기 하는 느낌. 하나를 알면 둘은 모르는 느낌. 알았던 것도 까먹어버린 듯 한 느낌. 또,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지금처럼 하면, 5년, 10년, 15년 한 선배들처럼 잘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직장에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두 가지 방향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맡은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고 싶고, 사람들에게 내 결과물의 높은 퀄리티로 인정받고 싶다는 측면의 고민이다. 안 시켜도 알아서 깔끔하게! 딱딱 완벽하게 처리해서 리뷰 나올 일도 없고! 꼼꼼하게 잘했다고 칭찬도 받고! 그러려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내 시간을 갈아넣어야겠지. 그래선지 일이 몰리는 연초 시즌이 끝난 이후로 두세 달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시간이 좀 비니까 불안하기도 했다. 내가 일을 대충하고 있나? 너무 놀고 배우는게 없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때 좀 더 놀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회사 내부 교육도 들어보고, 잘 알아둬야겠다 싶은 분야에 대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정리도 해보기도 했다. 이게 한 고민이고, 또 하나의 고민은 내가 장기적으로 유지가능한 수준의 업무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이 워낙 많다 보니 퇴사가 많은 것이 회계법인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선배들로부터 너무 잘하려만 하지 말라는 조언을 받는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제일 먼저 지쳐 떨어져서 나가게 된다고. 중간만 하라고. 힘을 빼라는 것이다. 다른 회계법인에서 인턴(파트)을 할 때의 경험인데, 중요한 문젠지 아닌지 고려하지 않고 사소한 것을 붙잡고 과도하게 스트레스받고 있었다. 그런 업무방식을 고수했다면 아마 업무에 파묻혀 금세 번아웃이 왔을 것이다. 간단한건 빨리빨리 쳐내고 정말 중요한 것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결국 나는 직장에서 언뜻 상반된 것으로 느껴지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열심히 새로운 것을 배워서 직장에서 인정받고 성공을 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번아웃이 오거나 건강을 해치지 않으며 내 삶의 균형감도 유지할 수 있는 중간지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 균형점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내 균형점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일이 많은 것에 대한 압박감에, 열심히와 꾸준히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오는 혼란함과 더불어, 회사 분위기도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여러 제도 변화와 시장 상황으로 법인의 업무가 과중해진데 반해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내가 법인 내에서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롤모델로 삼던 PM분들도 많이 떠났고, 동기들도 언제 나갈까 고민하는 것을 듣고 하다 보니 마음이 뒤숭숭하다. 어제는 꿈을 꿨는데, 새로운 필드의 PM이 잘못 걸려서 이상한 업무지시를 해서(맥락은 모르겠는데 팀원들과 함께 논밭에 있었다.), 또 구글챗에 온갖 필드의 여러 사람들의 읽지 못한 챗이 와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꿈이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업무를 배워야 하고 여러 업무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꿈에서 드러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내가 나에 대해서 바라는 이상과, 아직 부족하다는 현실이 충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4. 가벼움과 무거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의 도입부에서 밀란 쿤데라는 니체의 영원한 회귀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인생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인생의 분기점에서 나의 선택이, 또는 매일매일 무엇을 할지,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먹을지, 내가 오늘 지나온 모든 일이, 내가 죽더라도 다시 태어나 회귀하여 수천만 번 반복된다면? 또는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인생은 단 한 번 뿐이고, 죽으면 모두 끝이라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 인생의 매 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 박힌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잔혹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토마시는 우연히 만나 짧은 시간 함께했던 테레자에게 연락해서 200km 떨어진 프라하로 오라고, 같이 있자고 연락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생생하다. 그녀가 죽고 나면 자신도 살아남지 못하리란 것이 너무도 당연한 진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린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이고, 테레자는 멀리 떨어진 촌구석의 불쌍한 술집 종업원에 불과하다. 이 감정은 사랑이 맞나? 토마시는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다.


그는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테레자와 함께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하지만 토마시는 테레자와 함께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잊고 살아가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사전적으로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대사를 잊은 채 머리만 붙잡고 있을 뿐이다. 우리 인생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에 불과하기에, 캔버스에 붓을 대기가 너무 두렵다.


영원한 회귀라는 것은 가정에 불과하다.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서 으리으리한 집을 사고, 유명하고 대우 좋은 직장에 다니고, 사회적으로 소위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우정을 다지고 해도 죽으면 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인생이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생은 한번 뿐이고 죽음 뒤에는 영원한 부재와 허무만이 존재한다면, 우주의 150억 년 역사에서 내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이 순간은 나에게 있어 천금보다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내게 주어진 유일하고 소중한 생명의 기회를 날려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인생이라는 기회를 가치있게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언제 행복한가?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잡을 것인가.


5. 그리고 가벼움

그리고 지금 내게 좀 더 필요한 것은 가벼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나의 마음은,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균형에서 무거움에 좀 더 기울어져 있구나. 균형은 가벼움의 방향에 있구나. 그래서 이 시기 내가 열고자 하는 문은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일을 하면서 압박감을 느끼고,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너무 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나의 기대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일 잘하고,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일한지 만 1년도 안되었고 모르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 잘났다는 허위의식에 기반한 이상과, 아직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는 뉴비라는 현실이 충돌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힘들고 질문하는 것이 두렵다. 실수를 하면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다. 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지 압박을 받는다. 생각이 많아지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한다.


나에 대한 욕심도 기대도 조금은 버리고, 다만 그날그날 할 일에 충실할 수는 없는 것일까? 실수하고 혼나는 것, 욕먹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저 내 할 일을 하루하루 묵묵히 다하는 것. 이것이 내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다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꾸준히 배워나가는 것.


오늘 들은 얘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남들이 오늘 90% 정도 한 것 같고 나는 60%밖에 안되어서 부족하고 일 왜 이렇게 못하지? 하고 자괴감이 들어도, 내일은 60.5% 하면 되고, 그 다음날 61%면 되고 점점 한발짝씩 나아지면 된다고 하더라. 자기도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바보같은 실수를 했는데, 그게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은 전부 루틴한 일이고 창의성이 필요하지 않은 일인데, 이런 일은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다 노련해지고 잘하게 되기 마련이라고. 그래.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아직 나는 막내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들하고 비교할 필요도 없이, 어제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조금씩만 더 잘하면 되는 거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자책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일을 할 수가 없다. 스트레스받고 위축되어서. 그냥 뻔뻔하게. 할 일 하나하나 해나가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직은 부족한게 당연하다. 처음 보는건 잘 모르는게 당연하다. 적응하는게 필요하다. 다른 선배들도 다 똑같았을거다. 실수를 할 때마다 스스로 바보인가 자책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이제는 대단해 보이는 것이다. 마음은 가볍게,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게.




6.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

일 자체가 많고 어려운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내 욕심이 나를 괴롭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이다. 잘 못하는 것이 있으면 있는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그런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과정이 괴롭다면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의미가 없다. 인생에서 꼭 성공할 필요도 없고, 내가 최고일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열심히 나아가되 내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무거운 욕심과 고집을 버리자. 짐이 무거우면 먼 길을 갈 수 없다. 내게 스스로 만든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하지 말자. 집착을 내려놓아야 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다.  


돌아보면 나는 참 맥시멀리스트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 일, 사랑, 가족, 행복, 음식, 돈, 모두 갖고 싶고 모두 잘하고 싶다. 의욕이 넘치는게 좋기는 하지. 근데 가끔은 그게 집착과 욕심이 될 때가 있다. 그게 나를 괴롭힐 때도 있다. 그래서 좀 더 가벼워지고 싶다. 욕심을 내려놓고 싶다.


결국 다시 그러려니, 라는 말로 돌아온다. 일이 마음대로 안되어도 그러려니, 삶이 마음대로 안되어도 그러려니.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인생을 잠시 머물렀다 가는 여행으로 비유하더라. 무거운 마음으로는 먼 길을 즐겁게 갈 수 없다. 속옷과 세면도구만 챙기고 배낭을 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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