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주동 Feb 05. 2023

내 시대는 아직 나를 위한 준비조차 안된 걸요

삶 #15.

졸업 이전부터 활동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상반기와 하반기마다 각 멤버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그 중 답변하고 싶은 질문을 골라서 답변하는 건데, 몇년 활동하다 보니 인터뷰가 꽤 쌓였다. 어느날 내가 예전에 답변했던 질문들을 모아놓고 다시 읽어보니, 변한 부분도 많고 그대로인 부분도 많아 신기했다. 그때 그때의 내 가치관의 스냅샷을 본 느낌? 좀 길긴 한데 한번 정리해두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억에 남는 질문들을 정리해봤다. 남 보줄 목적보다는 내가 기록해 남겨두려는 목적으로 다 정리해두고 보니 양이 너무 많아서, 알아서 그냥 궁금한 질문만 발췌해서 읽어주시길.


19년 하반기


- 여름철에 에어컨을 켜고 이불을 덮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낭비충일까요? 최선의 정답을 찾아내는 합리적인 사람일까요?     

꼭 제가 낭비충이어서 그런 건 아니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선 반드시 논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에어컨을 켜고 이불 덮고 있으면 전기낭비잖아요. 근데 상상해보세요. 햇볕 완전 쨍쨍한 정신 나갈 정도로 습하고 더운 날, 할 일 싹 다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별 생각 없이 에어컨 18도로 맞춰놓고 샤워하고 나온 뒤 아 좀 춥다 으슬으슬할 때에, 냉동실에 있던 월드콘 하나 딱 까고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워서 극세사이불 머리끝까지 덮고 유튜브 좀 보다가 아 좀 졸린데 싶어서 잠이 드는, 이게 행복 아닙니까? 꼭 에어컨과 이불 문제가 아니라도, 너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가끔은 적당히, 막, 그냥, 대충, 덜 열심히,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게 더 즐거울 때도 있는 것 같아요!     

>> 23년 2월 5일 현재 여전히 적당히, 막, 그냥, 대충, 덜 열심히, 마음가는대로 살지 못하고 있음.


- 올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2학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가 쭉 힘든 것 같아요. 요즘 계속 마음이 힘들어서 왜 그럴까 고민을 많이 해봤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제가 너무 열심히 살려고 해서 저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거였어요. 올해 여름에 오랫동안 준비하던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 후 얼마간은 후련하고 기뻤지만, 이내 마음이 공허하고 불편해졌어요. 2년 반 동안 명확한 목표 하나를 정해놓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더는 달릴 필요가 없어지니까 이제 뭘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그냥 쉬고 놀면 남들에게 뒤처질 것 같고, 비어있는 곳을 뭔가로 채워야 할 것 같은. 그런데 뭔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은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찾아보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하느라 막상 실행은 하지 않았어요. 거기다 학교 다니랴 사람들 만나랴 시간적 여유는 없으니까 점점 마음이 지쳐가더라구요.

그래서, 내년엔 좀 적당히 하려구요. 덜 열심히 하구요, 저에 대한 기준을 낮추려구요. 뭘 더 하려고 하지 말고 시간적 여유를 더 많이 만들고, 친구들 많이 만나고, 하고 싶었던 것들도 그냥 고민하지 말고 지르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한번 시도해 보고, 아니면 말고, 이런 태도로요. 꼭 완벽하지 않아도, 잘하지 않아도 난 그저 이대로 충분하다. 내년은 이런 마음으로 살 생각이에요!

>> 23년 2월 5일 현재, 여전히 적당히 못하고 열심히 살고 있음. 다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음. 22년의 가장 큰 변화가 도전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았다는 것.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떻게 쓰실 생각이신가요?     

타임머신을 타고 제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더라도, 저는 제 인생이 이대로 너무 좋고 감사하기 때문에 타임머신을 쓰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지금까지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고, 제가 살면서 한 실수나 잘못도 엄청 많죠. 정말 힘든 순간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전부 제 인생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돌아가서 그걸 다 빼버리면 저는 제가 아니게 되는 거잖아요. 그냥 다른 사람인 거지. 그건 게임하다 어렵다고 치트키 쓰는 것 같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내가 너무 좋으니까, 그냥 그대로 살래요.

>> 23년 2월 5일 현재, 여전히 가고싶은 순간은 없음.


20년 상반기


- 가장 자신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만 꼽자면, 제 생각에 저는 위로나 조언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살다보면 위로를 한다는 게 참 힘들고 조심스러울 때가 많잖아요. 제가 그 사람 입장이 아니고 모든 상황을 다 알지 못하니까, 한마디 한마디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아요. 그래도 친구들이 힘든 시기이거나 조언이 필요할 때, 기분 나쁘지 않게 제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어요. 저에게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은 친구들이, 저랑 얘기를 하고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해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어서 저도 너무 행복하더라구요! 그래서 군대에 있을 땐 병사상담관도 했었어요. 혹시 요즘 힘든 시기이거나 고민되는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제 일처럼 같이 고민할게요.

>> 23년 2월 5일 현재, 함부로 위로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헤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러니 함부로 이러네 저러네 조언을 하기보다는 가만히 곁에서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면??

누구나 그렇듯 저 역시 화도 짜증도 하루에 몇 번씩은 나곤 해요. 피곤하고 마음이 힘들 때는 특히요. 뭐 아무리 마음을 착하게 먹어라 어쩐다 해도 감정이 생기는 것 자체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더라구요. 하지만 그런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제가 쓰는 방법이 몇 가지 있어요.

하나는 멍 때리는 거예요. 산책한다든가, 음악을 듣는다든가 하면서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머리를 비워서, 그 괴로운 문제에 대해서 계속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 멈추는 거예요. 이때 머릿속으로 이런 장면을 떠올리는 게 도움이 돼요. 마치 어떤 덩어리처럼 괴로운 생각이나 화가 내 앞에 둥둥 떠 있다. 그 생각과 나 사이에 줄이 하나 연결되어 있다. 그 줄을 잡고, 싹둑 잘라서 멀리 치워버린다. 이제 나랑은 관련 없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감정을 제 3자의 입장이 되어서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관찰 결과를, 왜 그런 감정을 내가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저 사람이 함부로 말해서 내가 화가 났구나, 저 사람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가 예전에 이러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화가 나는구나, 자존심이 상했구나. 최대한 구체적으로요. 이때 내 감정에 대한 글을 써보는 게 아주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일기나, 가사나... 또는 앞에서 한 것처럼, 머릿속으로 다른 사람, 또는 날아다니는 새가 보는 나의 지금 내가 화난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고 나면 이런 별것도 아닌 일에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열 내고 있나? 현타가 오면서 웃음이 날 때가 많더군요.

그러나 가장 좋은 건 입에 뭘 넣는 겁니다. 케익이나 마카롱, 파이 같은 디저트, 빵을 입에 넣으세요. 설탕과 밀가루에 몸을 맡기면 모든 게 행복해집니다. 주말 오후에 혼자 예쁜 카페가서 달달한 케익이나 마들렌 하나 시켜놓고 아이스 카페라떼 호록호록 마시면서 책 한 줄 읽어보세요. 무슨 말이 필요해?

>> 23년 2월 5일 현재, 올해는 명상을 좀 해보려고 하고 있음. 지속적인 자극이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인 것 같아서, 머리를 비우고 그냥 무덤덤해지는 연습을 해보려고 함.


20년 하반기


- 최근 들은 말 줄에 가장 기분 좋았던 말은 무엇인가요?

제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듣는 칭찬이 오래 기억에 남고 기분도 두 배로 좋더라구요. 말 예쁘게 한다고, 알면 알수록 보석같은 사람이라고 친구가 말해준 것도 정말 기분 좋았어요. 또 제가 다정한 사람이라고 해준 친구의 말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어제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었는데 장하다, 장하다 해주셨던 말도 좋았어요. 이런 말들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고 나를 잃은 상황에서도. 아 맞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지, 하고 다시 중심을 잡게 해주는 말들이에요.

>> 23년 2월 5일 현재, 최근에 들었던 말 중에는 내가 좀 무서워하는 이사님한테 왜 이렇게 똑똑하냐고, 얘기할 때마다 항상 많이 배운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음. 그분이랑 미팅 할 때마다 뭔가 모르게 위축되고 긴장하곤 했었는데 진심어린 칭찬을 들으니 열심히 준비해간 보람이 있어서 뿌듯했음.


- 가장 바쁘게 살았던 시기를 소개해주세요.

17년 초부터 19년 6월 말까지 공부하고 있을 때가 가장 바빴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종각에 있는 학원에 다녔었는데요, 그 닭장 같은 곳에서 어떻게 버텼나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일 싫었던 게 학원 가는 시간이랑 출근 시간이랑 겹쳐서 빨간 버스 뒷문에 끼어서 뒤에 서 있는 사람 가방이 자꾸 툭툭 치는데, 겨울에 패딩 입고 히터는 빵빵이라 더운데 사람들 사이에 껴있어서 좁아서 벗기도 힘들고,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끼고 있는데 안경에 김 서려서 핸드폰은 잘 보이지도 않는데 차는 막혀서 수업은 아무래도 10분은 늦을 것 같네? 왜 광화문 다 왔는데 차가 안 가지? 요런 갬성이었습니다. 수업을 듣던 학원 건물의 5층이 통째로 강의실이었는데요, 많을 때는 정말 2~300명이 그 강의실에 앉아서 미친 듯이 필기를 했어요. 월화수목금토 7시 반에 일어나서 8시에 집에서 버스 타러 나와서, 학원 가는 동안 수업 들을 거 예습하거나 녹음 듣고, 9시(아마 9시 10분)쯤 수업을 듣기 시작해서 1시까지 오전 수업.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 2시부터 6시까지 오후 수업. 6시부터 7시까지 저녁시간, 7시부터 10시50분까지 복습. 다시 버스 타고 집 가면서 쪽지 보면서 외울 거 외우고 멀미 나서 도저히 안되겠으면 눈 좀 감고 있고. 그래도 집 갈 때는 앉아서 갈 수 있었어요. 집 도착하면 11시 40분, 씻고 이것저것 하면 12시. 누워서 핸드폰 좀 보다 1시쯤 잠들고 일어나면 빰빠 빠빠빠 빠빠라바빠빰빠라바빠 빠빠빠 빠빠바바 기상기상. 다시 같은 하루 시작. 일요일이 되면 그래도 늦잠은 좀 잤는데 주중에 수업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복습이 밀려서 맘 편히 쉬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가방에 책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와서 아 카페 가서 좀 해야지 하면 결국 반도 못하고 책만 바리바리 싸들고 월요일에 다시 돌아오고. 이런 루틴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것만 얘기한 것 같은데 좋은 것도 많았어요. 점심 먹고 혼자서 노래 들으면서 청계천을 걷던 시간을 사랑했구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근처의 온갖 맛집을 다 찾아다녔습니다. 길 건너편에 ‘폼’이라고 조그만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가 있었는데 커피가 기가 막혔어요. 선생님들이 수업 중간중간 해주시는 뻘소리가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 날 계획한 목표치를 싹 다 달성한 날은 집에 가는 기분이 너무 뿌듯하고 즐거웠어요. 다시 하라면 못할 만큼 외롭기도 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이지만, 지식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그 과정이 있었던 덕분에 많이 배우고 성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 23년 2월 5일 현재, 공부할 때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21년 상반기


- 주동님을 주동님 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말해주세요! 또 그런 모습은 언제 자주 나타나나요?     

나 다운게 뭘까요? 너답지 않게 왜이래! 나 다운게 뭔데! 요런 중2병 인소갬성은 아니구요. 다만 스스로를 들여다볼수록 참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편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굉장히 시끄럽고 장난기도 많은 반면에, 어떤 사람들과 있을 때는 너무 차갑고 선긋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웃길 때도 있고 노잼일 때도 있구요, 퍼줄 때도 있고 계산적일 때도 있구요, 단단할 때도 있고 물렁할 때도 있고, 똑똑할 때도 있고 흐리멍텅할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A가 나인가 B가 나인가. 나는 이중인격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A도 나고 B도 나구나. 그냥 상황에 따라서 주로 발현되는 나의 모습이 다를 뿐이구나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그 양면적인 모습이 제 본질이에요. 그래서 나다운 것이라는게 한마디로 정의되지가 않고 상황에 따라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어요. 인간이 다 그렇지 않나요?

>> 23년 2월 5일 현재,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가면 갈수록 내가 몰랐던 나의 부분들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변덕이 심한거고, 한편으로는 계속 변화하는 거고. 후자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다.


- 일과 삶의 균형, 그 가운데 본인의 스탠스는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있나요? 요즈음과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 2가지가 다르다면 둘 다 부탁드립니다.     

인생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였어요. 미친 듯이 일만 하고 사람들 만날 시간, 가족과 보낼 시간이 전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봐야? 어차피 돈을 벌면 벌수록 한계효용은 체감해요. 그렇다고 해서 무료하고 발전이 없는 직장에 다니는 것도 제 타입에는 잘 안맞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바쁘고 열심히 살아서 계속 배우고 발전해나가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즐거움 중에 하나 아닐까요? 더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이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떻든 간에 직장에서 삶의 상당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또 스스로 벌어 스스로 먹고산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고귀한 일이기에 커리어도 저한텐 참 중요합니다.     

근데 워낙 바쁜 회사를 다니다 보니 워라 중에 라 쪽으로 아주 살짝 다가가는 것 같기도 해요. 일주일에 6~70시간씩 일하다보니 좀 빡세긴 하더라구요. 그렇다고 못해먹겠다 그정도는 아니긴 한데 다른 선배들 일하는거 보면 와 어떻게 저렇게 일하지 그런 생각도 들구요. 모르겠습니다. 아직 소화가 안된 경험이라서요! 지나고 나면 결론이 나겠죠?

>> 23년 2월 5일 현재, 어느 정도 결론이 났다. 현재의 균형점은, 일 쪽으로 좀 더 치우쳐져 있다. 내 발전을 위해서라면 지금은 조금 더 열심히 일해도, 고생해도 괜찮은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 늘 밝고 긍정적인 면모만 봤던 것 같은데 본인이 슬픔을 느끼는 순간은? 그 순간을 극복하는 방법이 궁금해요.     

슬픔을 느낄 때는 그 감정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려면서도 동시에 충분하게 슬픔을 느끼려고 합니다. 너무 슬픔에 매몰되어서 하루종일 그 자리에 맴돌며 죽어있기보다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또 그 날 해야할 일을 충실하게 마무리하고 일에 몰입합니다. 슬플 땐 슬픈 생각을 못할 정도로 바쁜 게 최고예요. 한편으로는, 너무 괜찮다, 괜찮다 하기보다는 내가 슬프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스스로 솔직해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빠져죽지 않을 정도로 슬픔에 살짝 잠겨있는 데 좋은 방법이라면 역시 일기를 쓰는 것 아닐까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죽죽 써나가다 보면 조금 감정이 해소가 됩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야기 힘든 고민이라 스스로 삭혀야 하는 고민도 있을 테고, 슬픔을 이야기하더라도 상대방이 빠져 죽을 정도로는 곤란하겠죠.      

그리고, 사람이 산을 넘을 때는 얼마나 높은 산을 넘는 줄을 모르고 숲을 지날 때는 숲을 지나는 줄을 모릅니다. 물을 건널 때는 이게 넓은 호수인지 바다인지 가늠이 안돼요. 근데 지나고 나면 아, 요만한 산이었구나, 저만한 호수였구나 그제야 알잖아요. 삶도 다 지나기 전에는 가늠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건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의 소화가 필요합니다. 참 별거 아니었는데 그 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왜 그렇게 막막했을까.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였는데. 혹은 그래도 그 때 그 일이 있어서 내가 더 단단해졌구나. 많이 배웠구나. 이런 생각을 살아오면서 참 많이 했어요. 생각보다 인생 쉽진 않긴 해도 못할 건 아니더라구요. 결국에 중요한건 삶에서 당면하는 어떤 사건의 실질이 아니라, 내가 그 사건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잘 이겨내왔던 스스로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슬픔도 다 지나가겠거니 다짐을 해 봅니다.

>> 23년 2월 5일 현재, 내게 지금 필요한 말을 과거에 내가 써둔 글에서 찾을 때가 있다. 이것도 그렇다. 주기적으로 삶의 여러 문들을 열어가면서 단단해질 때도 있고, 연약해질 때도 있는데, 지금은 좀 연약해져 있는 상태다. 이 글은 좀 단단할 때 써둔 것 같은데, 이 때의 중심을 다시 되찾아야겠다.


- 휴식할 때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사람들을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습니다. 저는 집에서 혼자 있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타입이 있는 반면에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타입이 있는데, 저는 후자인 것 같습니다. 집에 있으면 심심해요. 휴일에도 약속이 없으면 혼자 카페를 간다든가 하는게 좋습니다. 일주일에 한번만 집에서 널부러져 있으면 충분하더라구요.     

>> 23년 2월 5일 현재,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휴일인데, 약속이 없어서, 혼자 카페를 와서 글을 쓰고 있다.


- 같은 esfj로써 무기력해질때는 어떻게 대처하고 이겨내려하는지 궁금해요!     

일단 무기력해지는 두가지 케이스가 있을 텐데, 하나는 너무 바쁘고 열심히 해서 번아웃이 온 때문에 무기력해진 경우, 둘은 흘러가는 대로, 관성대로 살다가, 그저 무기력해서 무기력한 경우가 있겠죠. 너무 바빠서 번아웃이 온 경우에는 누워서 쉬어야하고, 무기력해서 무기력한 경우에는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어나서 뭐라도 분주하게 해야합니다. 최근에는 전자의 경우가 더 잦았는데, 이렇게 너무 바빠서 무기력해진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널부러져 있는 시간을 만드려 했습니다. 너무 효율적으로 살았으니 정말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래야 충전이 되겠다 생각을 했고 효과가 꽤 좋았어요.

>> 23년 2월 5일 현재, 왜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면 불안하지 여전히? 힘을 빼야하는데.. 그리고 MBTI도 ENFJ로 바뀌었다. 작년에 도전도 많이 하고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서 그런가?


-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저는 죽음이 제일 두렵습니다. 전 무신론자라 죽음은 곧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어요. 어떤 분은 죽음이 있음으로써 삶에 끝이 있고 그러니 삶이 더 의미 있는 것이다. 그 덕에 더 열심히 살게 된다. 이런 말씀 하시기도 했는데, 저는 제 삶이 너무 좋기때문에 100년이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영생은 몰라도 적어도 아주 오래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물론 건강하게! 내가 아끼는 사람들도 같이! 인류의 수명은 얼마나 연장될 수 있을까요?

>> 23년 2월 5일 현재, 노화는 질병이다. 얼마전에 쥐의 노화를 되돌렸다는 기사를 봤는데, 영생을 위해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21년 하반기


- 삶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      

제가 욕심이 너무 많아서 다 중요하고 다 갖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단 한 단어로 압축해서 말해야한다면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고 보람찬 하루를 보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일때문에 가족과의 시간을 지나치게 희생해서는 안되겠죠. 살면서 어떤 친구를 주변에 두느냐는 중요하지만 친구와 보내는 시간에 집착해서 연인에게 소홀해서도 안될거구요. 맛있는 걸 먹는 것은 좋지만 맛있는게 0칼로리라고 지나치게 먹으면 건강을 해칩니다. 세상엔 내게 중요한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그걸 다 가질수는 없어요. 그러니 삶에서 가장 중요한건 자신만의 균형이 어디인지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정된 시간과 돈,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 내가 제일 행복해질지 고민해야하고, 그러려면 우선 내가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한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나만의 균형이 어디인지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23년 2월 5일 현재, 여전히 균형을 잡는 것은 정말 어렵다. 아마 무덤 들어갈 때까지 지금 나에게 균형은 어디인가를 고민할 것 같다. 나의 가치관과 인격은 동적인 것이다. 그 순간의 상황과 내 생각에 따라서 유연하게 바뀔 수 있어야한다.


-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주동님의 취향이나 가치관이 있나요?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들, 나의 세계관을 정의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 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다양한 사람과 보내자.

- 적을 만들지 말자.

- 커피는 아이스라떼다.

- 삶에는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맞는 답이 있을 뿐이다.

- 과유불급

- 돈의 존재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지만 돈의 부재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 밥보다는 빵

-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어떤 객관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주관적인 의미부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질 수 있다.

-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눈치 보지도 말자. 즉, 집단주의에서 벗어나자.

- 깊은 심심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 과도한 욕심이 나를 옥죄지 않는지 생각해보자. 하지만 나는 다 가지고 싶다.

- 가족, 결혼, 육아가 필수는 아닌 세상이지만, 그것만이 줄 수 있는 보편적인 행복이 있을 것이다.

- 말을 예쁘게 하자.

- 한때 친하던 친구와 멀어지더라도 슬퍼할 필요 없다. 한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이 오는 것이고, 그 사람과 보낸 시간, 나눈 말들은 모두 내 안에 남아있는 것이다.

- 일과 삶을 분리해야 한다.

- 일에서 얻는 뿌듯함은 중요하다.

- 직업을 선택할 때는 그 다음 선택지가 열려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즉, 자유.

- 오래 살고 싶다.

- 전화위복

- 과음하는 것 싫다.

- 착한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이 되자

- 호의에 대가를 바라지 말자. 그런데 대가를 바라지 않기는 참 힘들다. 나라도 호의에 꼭 보답하자.     

백 개도 더 쓸 수 있지만 참을게요. 균형이 중요한 거니까... 그런데 제게 가치관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책에서, 또 여기에서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네요.

>> 23년 2월 5일. 대부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 이후로 느낀 것들도 많기는 하다.

 

- 주동님이 가지고 계신 습관 중 이것만큼은 참 괜찮은 습관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있을까요?     

마침 요즘 정말 습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데요. 영어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사람들도 더 만나고 싶고, 골프같은 운동도 하나 더 배우고 싶고 읽어야할 책도 밀려있고 등등등 할게 많은데 회사 때문에 너무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퇴근하고 나면 피곤하니까 어쩔 수 없지. 근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질문과는 반대지만 제가 가진 참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을 했던 게 바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는 거였어요.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심심함을 핸드폰이 모두 앗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핸드폰 켜고 누워서 너무 쉽고 편하고 즐겁게 유튜브를 볼 수 있겠죠. 근데 하루에 몇 시간씩 유튜브를 본다고 했을 때, 그게 평생동안 지속된다면 저는 제 인생의 몇 년을 날리는거죠? 그래서 요즘 핸드폰 사용시간을 재고 있어요. 지금은 4시간으로 한도를 정해놓는데 대부분 넘네요... 조금씩 연습해서 2시간까지 줄여보게요.     

아무튼 핸드폰 사용습관을 시작으로 나는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고, 무엇에 시간을 쓰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게 좋은 시간의 사용/좋은 습관은 무엇인지, 나쁜 시간사용/나쁜 습관은 무엇인지 써두었는데요.          

좋은 시간 사용/좋은 습관

책 / 운동 / 친구, 가족, 여자친구와의 시간 /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확보 / 아는 맛 안먹기 /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등등....     

나쁜 시간 소모 / 나쁜 습관

습관적인 핸드폰, 유튜브 / 야식 / 과식/ 먹고 눕기, 누워서 먹기 / 카페인 4샷 이상 먹기 / 앉아서 장시간 다리꼬기 / 일어나서 또는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보면서 꾸물대기 / 말 끊기 등등....      

아무튼 요즘 큰 관심사 중 하나가 “의미 있는 시간을 늘리고 나쁜 시간을 줄여야지” + “좋은 습관을 늘리고 나쁜 습관을 줄여야지”입니다.
 >> 23년 2월 5일, 여전히 나의 고민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습관이다. 하긴, 대체 어느정도 갓생을 살아야 습관이 고민이 되지 않겠어? 여전히 핸드폰도, 유튜브도 많이 보고 혼술도 종종 하지만, 반대로 좋은 습관은 점점 늘려가고 있다. 22년도에 가장 잘 한 것중 하나가 열심히 운동을 했다는 것. 몸도 많이 변했고,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번은 꾸준히 운동을 하니까 기분도 뿌듯하고 좋다. 여전히 완벽하진 않지만 올해도 딱 한발짝, 욕심내서 한발짝 반만 더 나아가고 싶다.
 

- 주동님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뭔가요?     

하나만 꼽기는 너무 어렵네요...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하면 제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책일텐데요. 정말 최선을 다해서 3권만 꼽는 걸로 타협하자면,

행복의 기원 :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구체적인 전략을 발견한 책입니다.

개인주의자 선언 :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에 대해서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문자로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모순 : 힘들었을 때 위로가 많이 되었던 책입니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 뿐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입니다.
>> 23년 2월 5일, 여전히 저 책들은 내 가치관의 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저 세권으로 멈추기엔 내게 중요한 영향을 준 책들이 너무 많다. 가장 최근에 추가된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파민네이션,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모두 이미 브런치에 글을 썼거나 쓸 예정인 책들이다. 22년에는 특히 내 가치관에 영향을 준 책과 영화, 음악을 너무 많이 만난 해라서 참 풍족한 한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 에에올, 도파민네이션, Teen troubles... 셀 수도 없다. 23년에도 22년의 반만큼만 삶과 예술에 진심인 한 해였으면 좋겠다.


22년 상반기


- 주동님이 아끼고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정말 아끼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모두 "생각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같은 말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보면, 생각이 유연한 사람, 자신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람, 어떤 이념이나 고집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 사과할 수 있는 사람,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세화는 '결: 거칢에 대하여'에서 이런 사람을 "완성된 자아"로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인 "회의하는 자아"라는 좋은 표현으로 정의하더라구요.

우리들은 너무 많은 경우 완성된 자아로 살아가는데, 완성된 자아는 생각하지 않고, 회의하지 않습니다. 내 말이 다 옳으니까. 내가 틀릴 리 없으니까.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지 않으므로 변화할리 없겠죠. 반면 회의하는 자아는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하고 의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두고, 자신이 틀렸다면 언제든지 설득될 수 있는 유연함을 갖고 있습니다. 흑백논리에 빠져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집단논리에 매몰되어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눈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만든 이 세상의 어떤 문제에도 완벽한 정답과 오답, 정의와 불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제가 아끼는 사람들은 모두 "회의하는 자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 곳은 항상 회의하는 자아로 가득한 집단이기 때문에 함께하는 시간이 항상 즐겁습니다.

>> 23년 2월 5일,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모든 일에 진심인 사람.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좋은 것을 보면 좋다고, 싫은 것을 보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삶을 진정 사랑해서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느끼는 사람이 좋다.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에 호기심을 가진, 항상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 주동님의 20대는 어땠나요? 또 어떤 30대를 만들어가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20대가 끝나는 것이 두려웠어요. 저는 제 젊음을 사랑하고, 지금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20대가 끝난다는 것이 뭔가 상징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좋을 때 다 끝났다! 20대의 젊음이 끝나고 나면 현실에 매몰되어 무미건조하게 늙어갈 일만 남았다. 인생 꺾이는거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하지만 막상 그때가 다가오니, 별 생각이 없어지네요. 그냥 지금이랑 똑같을 것 같은데요? 젊음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오는 게 아닐까요? 그것이 사람이든, 생각이든, 상황이든요. 아직 좀 남았지만 20대를 돌아보면 진짜 놀만큼 놀았고, 많은 경험을 했어요. 후회 없을만큼 잘 살았어요. 20대의 시작점에 서있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고, 훨씬 나은 사람이고, 스스로도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보다 훨씬 맘에 듭니다. 그만큼 성장을 많이 했다는 거구요. 그러니 대체 다음 10년은 얼마나 더 성장을 할지 상상이 안가네요. 아주 기대가 됩니다! 다만 나이를 먹는다고 꼭 더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태도로 앞으로 살아가야할까 생각을 해보면,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에 좀 더 열려있는 한해 한해를 보내고 싶어요. 특히 올해부터 시작해서요. 새로운 것들에 두려움 없이 더 많이 도전해보는, 생명력 넘치는 2022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23년 2월 5일,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오히려 솔직해지고, 더 유연해지고, 더 겁없어지고, 더 순수한 마음에 다가가는 것 같다. 나이를 거꾸로 먹어서 철이 없어지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그게 더 성숙한 태도인 걸까? 근데 그거랑 별개로 만 나이로 합시다.


22년 하반기

- 22년을 보내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정말로 고생했고, 정말로 잘했다고 스스로 말해주고 싶어요. 올해의 모토는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관성에서 벗어나서 내 한계를 도전하는 일을 많이 했는데, 그런 마음을 먹은 올해 초의 나에게 정말 고맙고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운다는 건 즐거우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새로운 일을 할때는 언제나 내가 바보인 것 같고 위축되는데, 그 시무룩한 마음을 잘 이겨내고 한발짝 한발짝 나아간 저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내'가 더 많이 채워지고 조금 더 풍성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23년 2월 5일, 22년에 참 잘살았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전환점이 되는 연도가 아니었을까?


- 가까운 친구가 미운 행동을 했을 때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혹은 밉게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사람으로서) 이뻐보이는 경우가 있나요?

저 같은 경우엔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편인 것 같아요. 이 사람과 내가 결이 맞는지, 안맞는지 상대적으로 잘 아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가까운 친구가 미운 행동을 해도,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뭘 해도 용서가 가능하고, 정말 미운 사람이라면 뭔 짓을 해도 꼴보기 싫은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사람이 성장을 해가면서 자신의 호불호와 나와 맞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을 조금씩 더 잘 판단하게 되기는 하죠. 사람에게 쏟는 에너지도 당연히 한정되어 있으니,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집중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 선입견을 갖고 우리 사람, 느그 사람 나누는게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부족하지만, 내년에는 가까운 사람은 더 넓게 포용해주고, 미운 사람이라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23년 2월 5일, 내 결에 맞지 않는 사람도 포용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당연히 너무 좋지만, 생각이 굳을까 두렵다. 확증편향을 피하고 싶다. 내 가치관은 언제나 잠정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올해는 내 마음 속 물을 맘껏 흐려야겠다. 망둥어 몇마리 풀어놔야지.


- 주동님도 숨기고 싶은 주동님만의 모습이 있나요?

그럼요. 모든 사람에겐 좋은 모습과 나쁜 모습이 있어요. 당연히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런 하나의 인격의 상반된 단면들 중 처해있는 상황과 환경,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발현되는 모습이 매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더 많이 발현하려 노력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도 마주하고 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도 있구나, 하구요. 자기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부정적인 모습이라는게 뭐냐고 물으신다면, 비밀이에요. "숨기고 싶은" 모습이잖아요?

>> 23년 2월 5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조리 솔직한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남김 없이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나에게 솔직한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 검정치마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최애곡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너무 많은데, 최애곡이 하나일 필요는 없죠? Big love, Everything, Antifreeze, 불세례.. 전부 좋아요. 이번 블루스퀘어 공연도 너무 황홀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 기뻤구요.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이유라면, 솔직한 가사들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검정치마의 아름답고 예쁜 가사도 좋지만, 날것의 가사도 숨기지 않는 것 같아서 좋아요. 인간이란 종이 원래 모순되고, 선과 악이 마음 속에 공존하는 동물인데, 검정치마의 노래들이 그런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애정이 갑니다.

>> 23년 2월 5일, 이제야 Thirsty에서 조휴일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정말로, 내 시대는 나를 위한 준비조차 안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Thirsty가 TEAM BABY보다도 좋다.


- 주동님이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는 언제인가요?
행복한 삶은,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사소하고 즐거운 좋은 기억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노란 은행나무와 새파란 하늘, 떨어지는 낙엽, 진한 아이스라떼의 향기, 친구에게 듣고 온 웃기는 썰, 밀가루와 설탕, 길을 지나가다 본 귀여운 강아지, 새로 발견한 나만 아는 보물같은 인디가수, 운동하고 나서 기진맥진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뿌듯함, 이런 것들로 가득한 하루, 가득한 삶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죠.

>> 23년 2월 5일, 이건 변한 것이 없다.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 않다.


- 주동님께서는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기가 더 좋아졌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요, 자신의 어떤 점이 더 좋아지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저는 매년 변해가는 제 모습이 너무 좋아요. 1년 전, 2년 전, 10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 이야 한주동 마이 컸네! 스스로 기특할 때가 많습니다. 인간관계, 가족, 직업적인 측면 점점 더 발전해가는 매년이 감사하고 행복해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무엇을 싫어하는 지 알게 된 것도 감사하고, 곁에 고맙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감사한 것을 굳이 꼽자면 점점 더 균형잡히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지금의 제겐 삶에서 지키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균형이지만, 예전의 저는 회색의 인간이 되는 것이 싫었어요. 단호하게 내 생각이 어떻고, 세상은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단호함이 어떻게 보면 편협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세상은 흑과 백이 아니고, 그 사이의 회색지대에 있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옳아보이는 말이라도 이면에는 틀림이 있고,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좋은 부분은 분명히 존재해요. 인간의 양면성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거죠. 가면 갈수록 어떤 하나의 주장에 매몰되지 않고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생각만 옳고, 다른 의견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닫힌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니까 오히려 더요. 세상에 대한 시각도 그렇지만, 마음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도 예전보다 더 성숙해진 것 같아요. 여전히 세상에는 화낼 일 투성이지만, 내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조금은 터득한 것 같아요. 이제는 내 마음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그걸 바로 알아챌 수 있고, 나에게 스스로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알 수 있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예전보단 여러모로 성숙해진 제 모습이 기쁩니다.

>> 23년 2월 5일, 이 때도 나는 내가 완성된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대는 계속해서 바뀐다. 흑백인간의 시대가 있었고, 회색인간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마도, 무지개인간? 컬러인간? 아무튼 그 비스무레한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날것이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철저히 삶을 느끼는 인간. 무슨 색으로 칠할지는 여전히 고민 중.

매거진의 이전글 워라밸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