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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동 Dec 09. 2023

인간에 대한 신뢰

삶 #19. 외로움의 철학 - 라르스 스벤젠

1. 차가운 사람


나는 차가운 사람일까?


금은 많이 친해진 친구가, 내 차가웠다고, 곁을 내주지 않는 것 같았다는 말을 했다. 그에게도 다가가기 힘든 사람으로 느껴졌다면,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평소에도 내가 사람을 대하며 마음 속 흐린 벽을 세운다는 느낌을 갖긴 했다. 새로운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서도 그렇지만, 어느 정도 가까워진 사람에게도 나에게 여러 겹의 벽이 있어서 마음 속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않으면 친절하나 곁을 내주지 않는 모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이나 만나고 가깝고 친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속에 있는 깊은 얘기를 자주 하거나 따로 연락을 하지도 먼저 만나자는 말을 하지는 않았으니 그렇게 느낄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주 약속도 많고, 만나는 친구들도 많지만 막상 그중 내가 정말로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머리로는 난 그들을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얼마나 신뢰한다고 느낄까? 나의 마음의 온도는 몇도일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차가운 사람이었을까.


2. 신뢰의 부재와 외로움

외로움과 전반적인 신뢰가 뚜렷한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 연구들이 다수 있다. 사람을 잘 믿는 사람일수록 덜 외롭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더 외롭다... 불신은 자기를 벗어나 밖으로 뻗어나가는 데 방해가 된다. 타인들을 향해 문을 닫는 사람은 자신을 문 안으로 가두는 셈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외로움이 따라올 가능성이 아주 크다. -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 아닌 것 같다. 먼저 연락을 하거나 먼저 만나자고 하는 일은 정말 드물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선을 넘어오길 기다리는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론 상대방이 다가오더라도 벽을 세우곤 한다. 대하기에 편안하지 않고 내가 먼저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나에게 가까워지고 싶어하고 다가오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선을 긋는다. 뭔가 노력을 더 해서 연을 이어가는 일도 드문 편이다. 예를 들어, 졸업 전 수업을 듣다가 같은 조였던 사람과 계속 친구가 되었던 일은 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다 같이 밥을 먹자거나,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먼저 다가가는 일이 없다. 뭐랄까, 조모임은 조모임이고, 내 영역은 내 영역? 아마 그런 것이 내 표정이나 행동에도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친구는 길을 가다가도 낯선 사람에게 쉽게 다가간다. 볕이 좋은 날 사진을 단체로 찍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더니 먼저 다가가서 웃으며 도와줄까? 찍어줄까?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보다 쉽게 웃고 먼저 도움을 준다.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선다. 그래서 오늘도 새로운 친구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하다 보면 즐거우면서도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물론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더라도, 친구들과 나는 다른 인격체다. 그러니 다른 이가 하는 행동과 태도를 전부 닮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더 행복에 유리한 태도일까. 세상에 문을 닫고 벽을 세우는 것과,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는 것.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롭다. 불신은 단순히 새로운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더 깊이 연결되는 것을 막는다. 예를 들어, 내가 마음을 주어도 언젠가 떠날지 모른다든가, 설명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든가, 나와는 다르다든가 식으로 마음 깊은 곳에는 불신을 남겨둔다면, 그 이상 외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3. 유기공포와 불안

그렇다면 나는 왜 불신하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두려워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사랑하면서 오는 불안과 같은 근원을 가진 두려움인가? 나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내가 이 사람에게 완전히 마음을 기대고 기대했을 때 나를 떠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내가 취약해지고 상처입기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오래된 두려움이 내게 있다.


내가 어릴 적 꽤나 싹수없고 자기중심적이었단 이야기를 했던가. 그러다보니 친구들과 트러블도 많았고 외따로 떨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거기다 부모님은 항상 바빴고 우린 이사가 잦았다. 나는 아마 이사를 가며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에 정을 떼다 붙였어야 했을 것이다. 매번 가지를 새로 잘라 접붙이를 해야 했던 나의 마음이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아 마음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그 시절을 다시 읽어본다. 나는 낯선 친구들에게 나를 새로 증명하고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웠겠다. 나는 이별하는 것이 두려웠겠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것이 두려웠겠다.


불안형 애착은 자신이 반복해서 버려질 거라고 걱정하게 하는 오래된 상처 탓에 뿌리 깊은 '내적 불안정성'이 형성되면서 생겨납니다... 불안 애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버려진다는 크나큰 두려움과 외로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믿음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자기 채움과 균형 잡힌 관계로 나아가는 열쇠라는 점입니다. 자기 내면의 취약하고 상처받은 부분을 계속 무시하면 어린 시절에 겪어서 이미 익숙해진 '유기 공포'를 연애에서도 똑같이 겪는 가슴 아픈 일이 연장될 뿐입니다. -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 제시카 바움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고 벽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상대방이 나와 같은 것을 원하지 않을까봐, 사람들로부터 상처입는 것이 두려우니까는 아닐까. 예를 들어,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서 보자고 했을 때 시큰둥하다거나, 또는 단지 상대방이 바빠서 보지 못했다, 그럼 나는 약간 서운할 것 같다. 뭐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밀어낸 것 같다 느끼고 마음 속에서 서운함을 만들 것이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거부경험의 잔재나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내 편인 사람을 갈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사람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온전한 이해와 조건 없는 사랑을 희구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버려질까 두려워서 문을 걸어잠그는 작은 아이가 있었다.


4. 는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나?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온다.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무엇이든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남아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떠날 것이라는 불안이 나를 옥죄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로써 나는 다른 이에게, 세상에 날이 서있고 경계하는 사람, 세상에 대해 벽을 세우고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나는 정말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나? 그저 부족한 대로는 사랑받을 수 없나?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데 나라고 다를까. 단단하고 매끈한 껍질로 나는 무엇을 가리고 있나. 틈 하나 내어주지 않고. 거부당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상처받은 기억과 버무려져 나를 보호하기 위한 높은 벽으로 세워진 것은 아닐까? 그 높은 벽으로 인해 겉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예의바른 사람, 선을 넘지 않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잘 주지 않고 말도 조심해서 하니(이것 역시 나의 착각, 과도한 자아상일 수는 있겠지만), 사회성 좋아보이고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진짜 마음을 터놓고 지낼 사람은 적고 그 사람들에게도 온전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내 마음과 생각을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그럼으로써 사람들과 더욱 연결되고 충만한 마음을 느낄 기회는 놓치는 것이 나의 모습이다.



5. 마음을 여는 것, 나에게.

그런저런 수를 쓰지 않고 나도 그저 나이고 싶은데, 무엇보다 나일 때의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내가 지닌 어쩔 수 없는 성격 같은 것들이 상대를 질리게 하고 실망스럽게 해 서서히 멀어지게 될까봐 겁이 났다. - 공룡의 이동경로, 김화진


다른 이들을 신뢰함으로써 벽을 내리고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야만 나의 외로움과 불안을 근본적으로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의 불완전함을 가리고 숨겨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떠날 것이라는 상처받고 연약한 어린 나의 두려움. 다른 인간에 대한 불신은 결국 나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나를 보호하 둘러싼 겹겹의 막이 되었다. 어느 시절에 그 막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적응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벽을 세우고 마음을 주지 않거나, 그 막 안에 들어온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마음을 주거나. 하지만 그 막이 나를 숨막히게 한다면 찢고 나가야 한다. 꽁꽁 둘러싼 막으로 희박해진 산소, 이제는 바깥공기를 들이마셔야 할 시간이다. 나는 날것 그 자체로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온전히 인정해야 한다. 잘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가슴으로는 모를 수 있다. 나에게 틈이 있고 그 틈들 사이에 나의 진정한 모습이 보여진다는 것을 이해한다. 나의 틈이 보인다는 것은 이제 그런 상처로부터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나무 아래서는 숲을 볼 수 없다. 볼 수 있는 상처는 내보일 수 있는 상처이다. 내보일 수 있는 상처는 이미 아문 상처이다.


가장 지키고 싶은 가치로 종종 동심을 이야기한다. 작은 것을 크게 느끼는 것, 그 존재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 하찮은 것을 하찮게 보지 않는 것. 다른 이들을, 나 스스로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그럼으로써 자유로운 것. 또는 순간의 장면과 행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삶을 좀 더 풍부하게 느끼는 것, 삶 또는 인간을 온전히 느끼는 태도. 나 그 자체로 존재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 나는 벽을 낮추고 동심으로써 세상을 대하고 싶다. 마음을 열어 틈을 내어보이고 더욱 취약해지고 싶다. 나의 날것의 모습을 내보여도 생각보다 별일 일어나지 않는다. 더이상 예전처럼 쉽게 상처받거나 가시 돋친 모습이 아니다. 나의 날것의 모습을 내보인다는 것이 함부로 행동하거나 말을 막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선을 조금 흐리게 하고, 다른 이들을 신뢰하고, 더 내면을 쉽게 드러내자는 것. 결국 동심으로서 세상을 대하는 것. 조금 힘을 빼자. 이미 충분히 단단해졌으니까. 다른 이들을 믿기 위해서는 나를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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