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있다. "요즘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있다"라고 거들먹거리기엔 매주 N번씩 꾸준히 배운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두 번째다.프리다이빙은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산소통 없이, 숨을 참고 맨몸으로 바다로 잠수하는 스포츠다. 열대의 바닷속에서 물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돌고래, 거북이, 산호초 사이를 유영하고 싶었다.하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갈길이 멀다!
첫 수업은 올림픽공원 잠수풀이었다. 퇴근하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가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복잡해서 길도 헤멨다. 강사 선생님에게 간단한 설명만 듣고 마스크와 오리발, 스노클만 챙겨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나를 감싸고 내 몸의 경계의 감각이 보다 선명해지는 느낌. 설렌다. 하지만 가만히 물 위에 떠있는 것조차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올해 제대로 된 수영은 처음이었다. 수영장이야 갈 일이 잘 없었지만, 이번 여름에 바다를 그렇게 많이 갔는데도 발만 적셨을 뿐 수영이라고 할 만큼 깊이 물속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오랜만에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좋았다. 공기가 아닌 보다 무겁고 차가운 유체가 내 몸을 단단히 감싸는 기분이 좋다. 물속에 있을 때면 물의 흐름에 따라 몸이 오르락내리락 흔들린다. 그 순간 나는 중력에서 자유로워진다. 마음도 그만큼 가벼워진다.그 순간에는 내가 물속에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다른 생각 하면 물 먹는 거다. 하지만 첫 수업이어선지 몸에 계속 힘이 들어갔다. 수업을 들으며 잘 떠있으려고 오리발을 휘적이느라 허벅지에 쥐가 났지만 존심에 괜찮은 척했다.
집에 돌아와서야 발뒤꿈치가 다 까졌다는 것을 알았다. 수영장에서 빌린 오리발이 사이즈가 컸나 보다. 오리발에 계속 쓸려서 발뒤꿈치가 벌게졌다. 다이내믹 압니어라고 물속에서 숨을 참고 수영장 끝까지 잠영하는 것을 배웠는데, 발장구를 하도 세게 치다 보니 살살해도 된다고, 너무 몸에 힘이 들어가면 심박수가 올라가 산소를 빠르게 소모하다 보니물속에 오래 있기 힘들다고강사 선생님께 한소리 들었다.힘 좀 빼!
오늘도 나의 전형적인 하루였다. 정성스럽게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에 발뒤꿈치가 다 까지는 하루.
2. 좋아하는 일도 지겨울 때가 있는 법이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거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 실려있는 수많은 편지들 중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의 일부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라는 문구를 좋아한다... 세상에 싫증 나지 않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뭐든 익숙해지면 그에 대한 흥미를 잃고, 그것의 소중함 또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 원하는 일이라면 항상 즐거워야 한다'는 환상을 지닌 사람들은 일을 하다 지겨워지면 전전긍긍한다... 모든 일은 기본적으로 힘들고 고되다. 그것이 아무리 당신이 원한 일이라 해도 놀이공원에 간 것처럼 기쁘고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기쁨과 보람은 지겹고 힘든 과정을 참고 넘긴 후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다. -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김혜남
올해는 일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나를 지치게 하는 일이 많았다. 연차가 올라가면서 경험도 더 쌓였지만 그만큼 책임도 커지고 알아야 할 것도 많아졌다.지구의 중력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고민이 많아지곤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뭘까? 나는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가? 나는 이 일을 하며 그런 순간을 많이 느끼고 있는가? 나는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평생 이 일을 하게될까? 다른 일을 찾는다면 그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 직장인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답을 찾았냐고? 당연히 못 찾았다. 애초에 저런 질문들, 삶의 방향에 대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답이 있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다. 설령 순간 답을 찾더라도 내가 보내고 있는 시기에 따라 처한 상황이 달라지면 정답은 달라진다. 하나의 단일한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변화하는 나에게 맞는 하나의 문장을 발견해서, 그 문장에 정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과정. 삶의 여러 가지 기로 앞에서 사전적으로는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그냥 무언가를 하나 선택해서 그리로 가보고, 나중에야 그것이 정답이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삶의 정답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잠정적 정답을 선택하는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의 사춘기를 마주한 내가 내린 선택은, 그냥 무작정 열심히 해보기. 생각하지 않고 일단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내 꿈을 이루며 살고 있다고. 하지만 좋아하는 일도 지겨울 때가 있는 법이다.내 삶의 소명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매 순간 즐겁기만 한 일이 있을까. 가끔 지치고 믿음을 잃을 때가 있더라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판단을 했다면 기다리고 인내하기. 어쩌면 발뒤꿈치가 다 까지더라도, 레인 끝까지는 가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내가 선택한 정답은 무작정 가보기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3. 힘을 빼려면 힘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깨달은 교훈은 힘을 빼는 것은 처음부터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힘을 주는 과정을 거친 사람이 힘을 뺄 수 있는 것이지 초보자가 갑자기 힘을 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경지에 오른 사람이 결과적으로 보면 힘을 빼는 것이지만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힘주고 노력한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왜 그때 그렇게 힘주고 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힘을 준 기간을 거쳤기에 힘을 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살고 노력하고 힘주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힘 빼는 여유를 얻을 수 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힘줘본 경험도 없으면서 힘 빼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결론은 이렇다. 1. 일이든 경영이든 운동이든 공부든 자기 계발이든 초보자라면 힘 빼기를 연습할 게 아니라 무조건 열심히 연습한다. 2. 코치 등에게 피드백받으며 다시 열심히 하고 시행착오를 거친다. 그리고 반복해서 숙련한다. 3. 숙련이 되면 힘 빼기를 의식한다. 이러다 보면 어느 순간 힘 빼기를 경험할 수 있다. 이후 힘줄 곳과 뺄 곳을 조절한다. - 커넥팅, 신수정
프리다이빙을 배우는 처음에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발뒤꿈치가 다 까졌지만, 나중에는 연습을 하고 물에 잠겨있는 순간들이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힘을 뺄 수 있을 것이다.아 이렇게 힘을 주면 가라앉는구나, 발뒤꿈치가 다 까지는구나를 아니까 조금씩 연습해서 힘이 빠지는 거지 처음부터 당연하게 힘이 빠질 수는 없다. 그러니 힘이 자연스레 빠질 때까지 생각 없이 꾸준히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열심인 순간들이 누적되며, 자신감이 되고, 익숙함이 되어 저절로 힘이 빠지는 것이 아닐까. 다 잘하니까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처음부터 힘이 빠져있다면 그냥 의욕이 없어 주저앉아있는 것이겠지. 주저앉아있는 것 역시 하나의 좋은 삶의 방식이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물론 이것 역시 지금 이 순간에만 유효한 잠정적인 정답이겠지만.대부분의 불안은 마주하고 나면 별 거 아니다. 지레 겁먹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그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