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먹방
다자이 오사무 단편집 《사랑과 미에 대하여》를 읽고
최근 열흘간〈헤어질 결심〉〈한산〉〈비상선언〉〈헌트〉〈뱅크시〉를 봤다. 이 작품들을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옆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 암실에서 가만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렇게 시야를 거대한 스크린으로 가리면 지금 나를 괴롭히는 모난 생각과 감정을 잠시나마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장치가 '눈 돌릴 틈 없는 거대한 스크린'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며 안드레아 거스키의 사진전에 가고자 했으나, 미루고 미루던 것이 어느덧 이 전시의 마지막 날이자 오늘인 8월 14일이 됐다. 당연히 갈 수 없었고, 또다시 태생적인 게으름을 탓했다.
마찬가지로 다자이 오사무 단편집 《사랑과 미에 대하여》를 읽으며 '암실'에 있는 듯한 경험을 했다. 《인간실격》에서도 느꼈던 것인데, 다자이 오사무는 인물의 감정을 독자에게 옮기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도 사건이 아닌 감정 중심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독자 입장에서는 논리를 따지기보다 시를 읽듯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나에게는 이 과정이 금세 몰입으로 통한다. 반드시 공감으로 귀결되진 않으나 공감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잊게 만든다.
원체 그가 그리는 인물에 극도의 감정 기복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 실린 단편에서는 인물의 감정을 어디까지 드러내고 요동치게 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 '실험 일지'를 보는 듯했다. '싫다' '예쁘다' '우울하다' '행복하다' '죽고 싶다'는 표현이 수시로 등장하고 불과 한 페이지 안에서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하던 인물이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써놓으니 '나와는 영 맞지 않는 소설이겠네'라며 일찌감치 읽을 마음을 접는 이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호불호가 갈리기로 유명하다.
많은 어른이 체면, 소통 방식의 부재, 이해관계 등의 이유로 감정을 드러내는 데 방어적이다. 나 또한 앞서 열거한 이유들로 인해 표현을 주저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어디서든 부대끼며 살수록 앙금은 생기게 마련이다. 운전하다 이유 없이 소리치거나, 당사자가 없는 술자리에서 뱅뱅 도는 이야기로는 해소되지 않는 그 응어리들. 다자이 오사무가 그린 주인공은 하나같이 그런 응어리를 남길 수 있는 필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내지르고 쓴다. 그런 모습에 수시로 대리만족하기도 했던 것 같다. 마치 먹방을 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