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의 엄마가 되었다
내 나이 서른여덟, 미혼이지만 아버지를 키우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궁금한 것을 뭐든지 대답해주시던 척척박사 백과사전이시던 아버지. 공부하고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또 어디든 배우러 다니시고 여행하시며 세상을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가둬진 어린아이가 되셨다.
의식만 있는 채로 눈만 뜨는 삶은 돌봄이 필요한 아기와 같았다. 아버지께서 병이 더 커지시기 전 자주 넘어지시고 묻던 것도 또 묻고 하셨다. 단기 기억력이 사라지고 행동이 더 둔화되고 마비될수록 돌봄이 더 필요해지셨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아기를 돌보는데 결혼도 하지 않은 나는 아버지를 돌보게 되었다. 엄마의 엄마 노릇 하던 것이 끝나자 나는 아빠의 엄마가 되었다.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 한다고 했던가. 기원전 3천년전 수메르 석판에는 요즘 젊은이들을 한탄하는 글이 실려있었다. 절대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어린 시절을 기억 못하고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탓하고 방치하고 외면한다.
젊은 사람도 불의의 사고로 돌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한다. 돌봄은 귀찮다고들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우리는 누구나 돌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돌보아야 할 때가 온다. 나는 남편도 아이도 없으니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부모님의 엄마가 되어야 했다. 아마 나도 나이가 들면 돌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 상황과 상태를 이해하는 이심전심의 마음이 사라져가는 시대, 떠나보내는 어머니에 이어서 아버지를 돌보며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배려하고 이해했나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