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시간, 애도하는 마음

두리

by 보물

심리치료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애도'라는 과정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과거에 우리는 슬픔을 그저 묻어두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큰 상실의 시간을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모두가 그렇게 묵묵히 견디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정신건강의 관점에서 ‘애도’는 더 이상 숨겨진 주제가 아니라, 삶을 건강하게 이어가기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빈자리는 결코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다만, 그 상실의 슬픔을 믿을 수 있는 관계 안에서 나누고, 공감 받으며, 위로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그것이 건강한 애도의 길이라고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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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 역시 몇해 전, 상실을 겪었다.

21년 4월, 18년을 함께한 반려견 두리가 세상을 떠났다.

두리는 순하고, 영리하고, 마음이 여렸던 나의 동생이었다.


한 번 알려주면 두 번 다시 잊지 않으려 애쓰던 아이.

무표정하지만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던 눈빛과 표정은, 우리 가족 모두의 마음속에 ‘두리’라는 존재로 선명히 남아 있다.


두리는 세 번의 수술을 견뎠고, 노년에는 시력도 좋지 않았다.

우리는 점점 그런 모습에 익숙해졌지만, 얼마나 불편했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짠해진다.


나는 두리를 애착 대상으로 여겼기에 딸을 키우듯 품었다.

산책을 나가서도 안고 다니는 일이 많았고, “그럴 거면 왜 산책을 데리고 나왔냐”고 언니는 농담처럼 핀잔을 줬지만, 코에 이것저것 묻히고 다니는 걸 보는 것보다 품에 안고 있는 게 속이 편했다. 또, 많이 걸으면 힘들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딸을 키우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도 안고만 다닌 탓에 걷는 시기가 늦어졌고, 병원에 가야 할 무렵이 되어서야 아이는 답답하기라도 하듯 혼자 걸음을 떼기도 했다.


두리는 나에게 ‘자기 표현’이라는 걸 처음 가르쳐준 존재였다.

평소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던 내가 동물병원 원장에게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던 기억이 있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두리를 그저 물건처럼 대하던 그 모습에 참을 수 없었다. 여러 번의 수술로 이미 약해진 아이인데, 그런 배려도 없이 대하는 모습은 너무도 참담했다.


결혼하고 친정을 떠난 뒤, 빠르게 늙어가는 두리를 보며 ‘내가 덜 챙겨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고,

그토록 사랑했던 존재에 대한 감정이 어느새 조금씩 식어가는 나 자신을 보며 또 한 번 슬펐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자식을 키우며 마음의 우선순위가 바뀐 내 삶에 서글펐다.


가끔 하늘에서 재밌게 놀고 있을 우리 두리가,

내 얼굴을 잊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점점 흐릿해져 가는데, 두리의 기억 속 나는 여전히 선명할까.


두리는 그날 그 시간에 멈춰 있으니, 나를 기억해줄까.

그러면서도 언젠가 서로 희미해져버릴까 두려워진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특했던 우리 두리는 아픈 몸을 이끌고 내 품에 먼저 파고들었다.
“안아달라”는 듯이.

그 모습은, 아마도 내가 나중에 아쉬워할 걸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리는, 식구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맑은 날을 골라 떠났다.


두리가 힘겹게 내 품으로 안겨들던 마지막 그 장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많이 안아둬”
그런 말을 건넨 것만 같아 마음이 또다시 무너진다.


지나간 시간 앞에, 한없이 무력해진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두리 이야기를 꺼낼 때, 꽤나 자연스럽게 말하지만 아직 완전히 보내지 못했다.

아마도,

우리는 아직도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