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late than never."
많은 분들이 제가 40대에 코딩을 배워 개발자로 경력을 바꿀 결심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하십니다. 사실 프로그래밍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는 저도 정말 제가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 공부가 끝난 후에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상당했습니다. 다만 그 당시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시도해 보자'의 정신으로 개발자에 도전했다고 밖에 설명드릴 수 없겠습니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던 2020년 4월에 저는 7년 반을 다녔던 회사로부터 정리해고가 됐습니다. 퇴사 후 첫 6개월은 원래 하던 업무 직군으로 지원하고 인터뷰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구인하는 회사도 얼마 없었고, 그나마도 광속으로 인터뷰를 탈락하면서 제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몇몇 회사와 인터뷰를 해보니 제가 일하던 직군은 보통 통계를 위주로 시장을 예측할 줄 아는 사람을 원하더군요. 이전에는 제가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회사를 나와서 하루아침에 갖은 기술도 없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저희 남편이 코딩을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개발자에 대한 동경심은 늘 갖고 있었습니다. 엔지니어는 꼭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 같았거든요. 더구나 개발직은 사람도 많이 뽑고, 신입이어도 급여 수준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개발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첫째 이유로, 저는 수포자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최소공배수, 최대공약수를 배울 즈음에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습니다. 둘째, 저는 프로그램의 오작동을 일으키는 버그를 잡으려고 몇 시간, 며칠을 보낼 인내심이 없습니다. 셋째, 문제 푸는 일, 퀴즈를 싫어합니다. 이외에도 제가 코딩을 못 배울 이유가 수십 개쯤 됐어요.
하지만, 저는 코딩을 배워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 42이었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내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한계를 테스트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학업성적이 아주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고, 직장생활에서도 항상 비핵심부서를 전전했습니다. 하지만, 제겐 늘 '나도 열심히 해서 뭔가 이뤄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 뭔가가 코딩이 된 거죠. 제 결심에는 남편의 설득도 한몫했습니다. 남편은 "세상에는 많은 신입 개발자가 필요하며, 머신러닝 같은 고급 분야 아니면 수학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엄청 잘 가르쳐줄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그렇게 남편의 꼬임에 넘어갔습니다.
주로 온라인 강의를 중심으로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남편에게 물어봤습니다. "친절하고 수준 높은 지도"의 약속은 지켜졌을까요? 아니요. 저는 공부 내내 남편과 엄청 싸웠습니다. 저의 불만은 주로 남편이 친절하게 답해주지 않았다는 거였죠. 남편은 물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남편에게 배우지 말아야 할 게 운전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외국 친구들은 제가 남편에게 코딩 배우다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뻔했다 ("Let's just say those coding lessons almost required a crash course in relationship troubleshooting.")고 하면 남의 속도 모르고 얼마나 재밌어하던지요. 그런데, 제가 개발자로 취직하고 나서 남편이 아이들 앞에서 축하인사로 한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납니다. "엄마는 진짜 대단해. 수학 기본기가 전혀 없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코딩을 공부해 취직까지 한 거야. 엄마한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라고요.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1년 반 공부해 2년 가까이 정규직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저는 여기가 제 이야기의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 침체로 인해 회사가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저는 또 실직자가 됐습니다. 2년 경력도 있으니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취직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너무 감사한 위로죠.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요즘 회사들은 인력규모를 작게 운영하길 선호하고 이제 AI와 일자리를 다퉈야 하는 세상이 왔어요. 끝날 줄 알았던 제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시작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