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weaknesses are our strengths in disguise." 이는 자기 계발 분야의 유명 작가인 웨인 다이어가 한 말로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점들이 사실 강점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어떻게 약점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거지'라는 강한 의문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니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방국립대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한 40대 중반의 아줌마입니다. 미국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땄지만, 이것도 미국 중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동네의 학교였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발자로 자리잡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지요. 미국이 한국 사회에 비해서는 지원자의 나이, 학벌에 상대적으로 관대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스탠퍼드대, MIT와 같은 유명 대학의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에너지 넘치는 젊은 엔지니어를 선호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저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초기에 많은 심적 갈등을 겪었어요. '공부를 해서 코딩을 할 줄 알게 되더라도 인터뷰를 통과할 수 있을까'부터 해서 '나이 많다고 싫어하면 어떡하지' 등등 저의 모든 것들이 약점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수많은 걱정 속에서도 개발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갔습니다. 그때에는 개발자가 되는 것 말고 제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거든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시는 한국인 개발자들은 대개 한국이나 미국의 유명 대학 출신들입니다. 워낙 많은 한국 엔지니어가 미국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미국 채용담당자들도 한국의 유명대학들을 잘 알고 있어요. 또한 미국 사회에서도 한인들은 동문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는 직원 추천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채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추천을 받아도 보통 반나절에 걸친 3-5개의 기술 면접을 통과해야 채용이 됩니다. 얼핏 보면 비합리적인 방식처럼 보이지만, 모르는 사람보다는 수많은 지원자 중 우리 회사 직원이 함께 일해본 적이 있거나 추천하는 사람을 뽑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채용담당자들에게 제가 나온 대학은 아마 생소할 거예요. 저는 15년간 미국에 살면서 한 번도 대학 동문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실리콘밸리에 사는 유일한 ㅇㅇ대 출신인지 조사해보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학연이 없는 저는 15년 전 미국으로 이주한 이래, 남편의 동문 및 친구들, 이웃주민, 아이들 학교에서 만나는 학부모 모두 가리지 않고 제 인맥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프로그래밍 공부를 어느 정도 마쳤을 무렵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코딩 공부 중이며, 웹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첫 인턴쉽 기회를 얻고 개발자로 일했던 회사도 같은 동네 주민이 설립한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주말에 아이들 한글학교 데려다주러 간 길에 만난 지인에게 큰 기대 없이 혹시 인턴 필요하지 않으시냐고 건넨 말이 취업으로 연결됐던 거죠.
또 제 경험상으로 나이 많은 것도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아줌마가 되니 남의 눈치를 많이 보지 않게 됐습니다. 잘 모르겠고 이해가 안 되면 누구든 붙잡고 묻습니다. 별로 창피하지 않아요. 똑같은 걸 여러 번 반복해 묻지 않는 이상 질문하는 건 괜찮습니다. 제가 나이 들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안쓰러운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도와주십니다.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남자아이 둘 키우고,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인내심의 한계치도 많이 올라갔어요. 웬만한 일에 놀라지도 민감하게 반응하지도 않습니다. 남들이 하기 싫은 일도 제가 먼저 하겠다고 자청해요. 집에서도 늘 남자 셋 뒤치다꺼리하는 게 제 일이었으니까요. 아직 초보 개발자이기 때문에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이라도 제가 할 수 있으면 팀에 보탬이 되니 감사한 마음으로 잘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마지막으로 문과 출신 개발자는 단점이 아니라 제 장점이 됐습니다. 저의 이전 매니저는 다른 엔지니어들에게 없는 비즈니스 센스, 고객대응 능력이 있다며 저를 많이 칭찬해 줬었어요. 개발자가 개발 잘하는 게 제일 우선이긴 하지만, 직장 생활에서 소프트 스킬도 많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약점만 같았던 제 전공이 저의 차별점이 된 거죠. 매니저 칭찬에 너무 취했던지 '개발능력만 더 키우면 내 회사도 창업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잖아요. "Anything is possible." 불가능은 없으니까요.
여러분의 단점은 뭔가요? 내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한 번 찬찬히 살펴보세요. 혹시 그 단점이 사실은 여러분의 가장 큰 장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