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터의 일
기업 커뮤니케이션실에서 가장 빈번하게 하는 퍼플리시티*로 보도자료와 기획자료 그리고 인터뷰가 있다. 뒤로 갈수록 기자의 자유도가 높아진다. 보도자료는 기업이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담아서 배포하고, 대부분의 매체에서 원문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보도기사를 작성한다. 반면 인터뷰는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대략적인 방향성만 알뿐, 정확히 어떤 식으로 내용이 전개될지 알 수 없다. 즉 인터뷰는 퍼블리시티 중 메시지 통제가 어려운 측에 속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터뷰를 하는 이유는 메시지의 깊이와 생생함에 있다. 보도자료와 기획자료로 미처 다 풀지 못했던 뒷이야기, 이를 테면, 배경이나 과정, 전략 등을 현업의 목소리로 디테일하게 풀어낼 수 있는 건 인터뷰만의 강점이다.
*퍼블리시티(publicity) : 기업(또는 조직)이 '언론'을 통해 유리한 메시지를 형성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 좀 더 쉽게는, 언론에 기사를 내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인터뷰의 8할은 질문을 하는 자(인터뷰어)와 답변을 하는 자(인터뷰이)가 만든다. 그렇다면, PR 담당자의 역할은 인터뷰를 성사시키면 끝인 것일까? 사실 주니어 때는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인터뷰가 제일 쉽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머지 2할을 채워 100%의 인터뷰를 만드는 것이 PR인의 역할임을, 인터뷰 경험을 늘려가면서 깨달았다. 이번 콘텐츠에는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내기 위해, 인터뷰 때마다 지키고 있는 체크리스트를 정리해 봤다.
적어도 PR 담당자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뷰로만 풀 수 있는 메시지인가? -> 형식의 적절성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 시기의 적절성
이 '인터뷰이'가 최선인가? -> 메신저의 적절성
인터뷰는 보도나 기획자료에 비해 홍보성이 짙다. 기업의 인터뷰는 하고 싶은 말 대잔치기 때문에 일단 '믿고 거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인터뷰를 주최하는 입장에서, 많은 공력을 들여 진행하는 인터뷰를 기업 사람들만 보고 끝내기는 너무 아깝다. PR인도 기자 못지않게 독자들이 읽고 싶은 인터뷰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이 고민이 형식과 시기, 메신저의 적절성을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답변을 하는 내부 구성원은 최적의 인물로 심사숙고해 선정한다. 생각보다 간과하기 쉬운 건 질문자인 인터뷰어다. 동일한 매체, 동일한 답변자라 하더라도 질문하는 사람에 따라 정말 다른 결의 인터뷰가 나온다. 질문의 퀄리티가 답변의 퀄리티를 만든다.
인터뷰를 하는 매체는 언론부터 뉴미디어까지 다양하다. 인터뷰를 해야 할 때 적절한 매체를 찾으려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미리 인터뷰어 후보군을 리스트업해두는 것이 좋다. 뉴미디어의 경우 평소 글맛이 쫀쫀하거나 흥미로운 테마를 맡고 있는 에디터를 관심 있게 보고 기록해 둔다.
언론은 미디어 미팅을 할 때가 기자의 관심사를 알아보기 좋은 기회다. 기자가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는지, 우리 기업의 어느 부분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는지 등을 미팅 후에 잘 정리해 둔다. 당장은 아니어도, 인터뷰를 진행해야 할 때 정리해 둔 자료가 큰 도움이 된다.
보통 인터뷰 2-3일 전에 인터뷰어를 통해 사전 질의서를 전달받는다. 사전 질의서는 인터뷰이에게 단순히 전달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되고, 인터뷰의 전략을 짜는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원하는 메시지가 나올 질문들이 들어가 있는지, 리더급 인터뷰인데 너무 실무 단에서 답할만한 how-to 질문이 많지는 않은지, 반대로 실무자 인터뷰인데 너무 큰 그림 위주의 질문들로 구성돼 있진 않은지 등을 확인한다. 인터뷰어와 조율할 부분이 있다면 합의하여 수정된 질의서로 인터뷰이에게 전달한다.
1-5년 차 주니어가 인터뷰를 진행할 때는 질의서를 토대로 인터뷰 시뮬레이션을 필수로 하는 편이다. 대부분 인터뷰를 처음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터뷰 기술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해야 할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거나, 답변에 임팩트가 부족해 인터뷰어 입장에서 포인트를 끄집어내기가 힘들도록 말하는 등. 따라서 인터뷰이가 초안으로 잡은 답변을 들어보면서 말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점검한다. 해야 할 말 중 더 강조하거나 숫자를 뒷받침해서 말해야 힘이 생기는 부분 등에 대한 가이드도 제공한다.
인터뷰가 시작되면 무대의 주연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기 때문에, PR 담당자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절한 낄끼빠빠*는 인터뷰 현장이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터뷰이가 기자의 질문 의도를 잘 캐치 못하는 경우 질문을 쉽게 풀어서 말해주거나, 답변이 두루뭉술하거나 좀 허술하다고 느껴지면 "제가 조금 보충 설명을 드리면~" 하면서 보완을 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대로 나갔을 경우 위험할 '수도' 있는 단어나 표현이 답변 중에 나온 경우에는 기자가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보충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인터뷰 종료 전에는 분위기를 봐서 핵심 메시지를 한번 더 강조해 짚어주기도 한다.
*낄끼빠빠 :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줄임말
필수는 아니지만 필요는 한 소소한 운영 상의 역할도 있다. 인터뷰 중 마실 물과 커피, 인터뷰가 길어질 경우 당충전을 위한 간식 준비 같은 것들이다. 사진 촬영이 진행될 경우에는 뷰가 좋거나 여유 공간이 있는 회의실을 예약한다. 인터뷰에서 소개할 상품은 실제품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하고(가능하다면 인터뷰어에게 선물로 주는 것도 괜찮다), 보여줄 상품이 없는 IT서비스는 시연을 미리 준비한다.
항상 무대 뒤에서 인터뷰이가 빛나게 하는 일만 하다가, 몇 년 전 내가 인터뷰이가 돼서 생애 첫 인터뷰를 했었다. 세상에 내 메시지를 내보내는 설렘과 뿌듯함, 말 실수할까 조심스러운 긴장감 등이 공존하는, 인터뷰이가 느낄 감정들을 그때 모두 느껴봤다. 이후 PR 담당자로서 내부 구성원들의 인터뷰를 팔로업할 때마다 그때의 감정을 떠올린다. 이 인터뷰가 누군가에게는 인생 첫 인터뷰이겠고, 기회의 시작점일 수도 있겠고, 자신이 해온 일의 훈장이겠구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PR 담당자에게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지만, 동시에 일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게 인터뷰의 맛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