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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기를 잃지 않기 위한 11년차 PR인의 공부법

커뮤니케이터의 일

by 공현주
"현주님은 퇴근 후에 뭐하세요?"
"저녁 모임 없는 날엔.. 운동하고 공부해요"
"공부요? 무슨 공부요?? 영어 공부요??"
"그냥 뭐.. 실무에 도움 되는 이것저것..ㅎㅎ"


후배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 수도 있을텐데, 왠지 모를 민망함에 '어떤 공부를 하는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이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10년 넘게 PR을 해오면서 드는 생각은, 이 분야는 넓게 알면서도 깊게 파야하는 참 어려운 분야라는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일인지라 내가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영역은 전문가급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연차가 쌓이면 공부할 게 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어째 1년차 때보다 11년차인 지금 공부할 게 더 많아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는, 매일 조금씩 하는 이 공부가 PR인으로서 기본기를 잃지 않도록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PR을 잘하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구조를 잡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원 때까지의 공부는 공부할 범위와 재료가 명확했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의 공부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잡기 어려웠다. 정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5년차가 될 때까지는 내게 맞는 공부법을 찾기 위한 시행착오를 겼었던 것 같고, 구조가 잡힌 후에는 더 좋은 공부의 재료를 발견하면 업데이트하며 진화시켰다. 이 콘텐츠는 그렇게 오랜 시간 다져가며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공부법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공부는 목적이 아닌 수단입니다. 감각이 좋은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지금 어떤 지식이 부족한가, 도움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서 파악하고 있죠. 무엇이 부족한지를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화제에 오르내리는 키워드를 무작정 공부하는 건 의미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들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인풋에만 힘을 쏟아붓는 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시간 낭비일 뿐이죠."

야마구치 슈&구스노키 겐 <일을 잘한다는 것> 중


언제나 how보다는 what이 먼저고, what보다는 why가 먼저다.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의 본질에 닿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해한 PR/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메시지로 관계를 짓는 일'이란 것이다. 여기서의 메시지는 고객향 메시지는 물론, 우리 브랜드와 연결돼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 대상 메시지를 의미한다. 이해관계자는 언론이 될 수도 있고, 투자자, 내부 구성원, 정부 또는 특정 단체가 될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전략적으로 한다는 것은, 자신이 PR하는 기업의 이해관계자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그들과 닿아있는 온오프 접점을 잘 찾아, 적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도식화하면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대략 이런 모습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기업별로 다르다. 일반적인 형태로 봐주시길) 메시지를 보내는 발신자는 브랜드가 되고, 메시지를 받는 수신자는 이해관계자가 된다. 브랜드와 이해관계자는 메시지로 연결되고, 그 메시지는 미디어라는 그릇에 담겨 전달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크고 작은 환경에 둘러싸여 영향을 받는다. 즉,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인 '메시지'를 잘 만들기 위해서 공부해야 하는 영역은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를 알아야 한다.

2) (담당하는 브랜드의) 핵심 이해관계자를 알아야 한다.

3) 핵심 이해관계자들이 이용하는 미디어와 그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

4) 핵심 이해관계자들이 반응하는 메시지의 특성(=콘텐츠)을 알아야 한다.

5) 외부환경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2)에 해당하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앎은 공부보다는 현장에서 부딪히며 알아가는 배움이 훨씬 크다. 예를 들어, 핵심 이해관계자가 언론이라면, 언론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기자들을 직접 만나며 어떤 특성을 가진 집단인지 체득해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핵심 이해관계자가 정부라면? 국회의 보좌진들을 이론적으로 공부한다고 그들을 알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이해관계자별로 세부 영역이 구분된다. 레거시미디어를 다루는 언론PR, 정부와 소통하는 대외협력,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를 집중 관리하는 IR(Investor Relations) 등으로 말이다. 큰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조직은 이해관계자별로 담당자가 나뉘어 있지만 스타트업이나 규모가 작은 기업은 PR담당자가 모든 영역을 커버하는 경우가 많다.


이외 1)과 3)4)5)는 개인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따라 개인차가 나는 영역이다. 내가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 영역도 이 네 영역이다. 이제 각각의 영역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정리해보려 한다.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담당하는 기업(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입사하면 자연스럽게 기업에 대해 알게 된다. 체계가 잡힌 조직은 몇 개월 간 기업을 알아가는 온보딩 과정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정말 기본적인 입사 교육만 진행하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나 또한 대부분 알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좀 더 빠르게 맡은 기업을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해 공부법을 찾았다.


먼저 큰 뼈대를 잡는 게 중요하다. "무엇을 알릴 것인가?"에 대한 것이 뼈대다. 뼈대는 필러(pillar)라고도 일컫는데, 기업의 PR 요소를 꼽아 메시지 기둥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테크 스타트업 PR을 담당했을 때 그렸던 메시지 필러. 새로운 기업에 들어가면 항상 이 작업부터 시작한다.

메시지 필러를 잡았다면 해당 필러에 속하는 내용을 정리하며 숙지한다.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아래와 같다. 나는 엑셀 시트를 필러별로 나누어 정리했지만, 포맷은 상관없다. 노션이 될 수도 있고, 워드가 될 수 있다. 자신이 가장 편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하면 된다.

- 회사 홈페이지 : 기업에서 가장 알리고 싶은 내용을 매우 정제된 언어로, 핵심만 추려 보여주는 곳이 바로 회사 홈페이지다. 교과서로 치면 개론 같은 역할을 한달까. 기본기가 튼튼해야 심화 과정을 밟을 수 있듯이, 회사 홈페이지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이후 업데이트되는 정보들도 구조가 잘잡혀 머릿속에 들어온다.

- 회사소개서 또는 미디어용 프레스킷 : 홈페이지에 다 담지 못한 기업에 대한 소개를 알 수 있어 회사 홈페이지 보충자료로 좋다. 언론의 이해를 돕기 위한 프레스킷은 기업에 따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있다면 회사소개서와 함께 보고, 없으면.. 보통 자신이 입사해서 만들며 공부하게 된다.

- 담당 브랜드가 나온 기사 : 최소 3년치의 기사는 리뷰해 볼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 흐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보통 브랜드가 나온 주요 기사들은 홍보실에서 잘 아카이빙을 해두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 브랜드 영상, 책 등 브랜딩 콘텐츠 : 언론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은 브랜드 관점에서의 스토리들을 파악하기에 좋다.


미디어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어디에 담을 것인지, 미디어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1차적으로 요새 인기 있는 미디어의 특성을 파악하고, 2차적으로 우리 타깃에게 소구력 있는 매체인지 적합성을 판단하는 것까지 미디어 공부의 주된 목표로 삼는다. 예를 들어, 틱톡이 최근 몇 년 간 가장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미디어라고 해도, PR하는 기업이 주요 의사결정권자가 4050인 B2B 기업이라면, 숏폼 중심의 10대가 주 유저인 틱톡은 우리 기업에는 핏한 소통 채널이 아닐 수 있다. 아래는 미디어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채널이다.

- 더피알(THE PR) : PR/커뮤니케이션 전문 매거진(구독형). 온라인과 지면 중 선택 가능하다. 데이터 기반 미디어 흐름과 기업의 미디어 활용 사례를 스터디하기 좋다.

- 어거스트 : 미디어 산업을 매우 깊이 있게 분석해 주는 뉴스레터. 미디어의 스펙트럼(ex. 이것도 미디어로 볼 수 있구나!)을 넓히는 데 유용하다.

만약 특정 미디어를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새롭게 운영해 보기로 결정했다면, 활용법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유저가 돼 써보는 것이다. 유저가 돼 봐야 어떤 식의 메시지를 던져야 이 세계(미디어) 안에서 반응률을 높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혹 해당 미디어로 광고 집행까지 해야 한다면, 보통 미디어의 비즈니스 사이트가 가장 정확하고 친절한 가이드를 제공하니 먼저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콘텐츠

타 브랜드의 콘텐츠 사례를 분석하며 우리 브랜드의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야 할지 기획의 시드를 얻는 다. 꼭 같은 업계가 아니어도 괜찮다. 최대한 다양한 브랜드의 콘텐츠를 접해야, 메시지 기획에 쓸 재료들도 많아진다.

- 브랜더쿠 & 생각노트 : 브랜드 활동에 대한 자체적인 해석과 의미를 곁들여 전하는 뉴스레터

- 폴인 : 실무자들의 인터뷰가 많아, 성공한 콘텐츠 사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기에 좋다.

- 롱블랙 : 너무 훌륭한 브랜드 큐레이션. 매일 1개의 콘텐츠를 24시간 안에 봐야 하는 구독형 콘텐츠 플랫폼이다.


외부환경

메시지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기업이 놓여있는 현재의 환경, 즉 '맥락(context)'을 잘 알아야 한다. 맥락은 매우 복잡한 요소요소들로 얽혀 있어 어느 한 가지로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에, 거시환경과 업계환경(타깃 인더스트리), 라이프스타일 이렇게 세 측면을 최대한 두루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먼저, 거시환경이다. 거시환경으로 공부해야 하는 범위는 기업의 외부 경제환경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프레임워크인 'PEST analysis'*를 기준으로 삼았다.

*PEST analysis :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1967년에 최초로 제시한 도구로, 정치 법규 측면의 요인(P), 경제적 측면의 요인(E), 사회 문화적 측면의 요인(S), 기술적 측면의 요인(T)으로 기업의 거시경제 환경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프레임워크

- 네이버 <신문보기> : 주요 매체의 기사를 지면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알고리즘이 내게 맞는 뉴스를 정확하게 추천해 주는 시대지만, 뉴스를 취사선택하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한 매체 하나는 꼭 필요하다. 신문사의 헤드라인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오늘 가장 중요한 이슈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 김현정의 뉴스쇼 :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생각하는 뉴스 팟캐스트. 네이버 신문보기에서 뉴스 전반을 퀵하게 파악했다면, 뉴스쇼는 한 이슈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매일 출근길에 듣는다.

- 뉴닉 : 중요 이슈를 매우 쉽게 전해주는 뉴스레터. 복잡하고 어려운 뉴스를 이해하는 용도로 좋다.

-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 오늘 가장 중요한 경제 뉴스를 큐레이션 해주는 경제 팟캐스트. 출퇴근길을 활용해 듣기 딱 좋은 분량. 이진우 기자의 날카롭고 사이다 같은 질문을 듣는 재미가 있다.

- 어피티 : 손에 잡히는 경제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경제 뉴스를 파악하기 좋다. 다양한 기업들의 비즈니스 동향을 퀵하게 파악할 수 있어 유용하다.

브랜드가 속해 있는 산업/업계의 동향을 알아야, 우리 브랜드가 내는 메시지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다니고 있는 기업이 유통업계에 속해 있기 때문에 리테일 전문 매체를 보고있다)

- 기묘한 트렌드라이트 : 매주 수요일 빼놓지 않고 보는 커머스 뉴스레터. 금주 가장 이슈가 되는 유통업계 소식 중, 2-3가지를 꼽아 전략적인 배경 등을 알려준다. 커머스 분야에서 가히 독보적인 인사이트를 가진 매체라 생각한다.

- 리테일톡 : 유통 전문 매거진. 국내는 물론 해외 리테일 소식까지 깊이 있게 알 수 있어서 트렌드라이트와 함께 매주 꼭 챙겨본다.

- 업계 리포트 : 분기 또는 반기별 업계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한경컨센서스나 딥서치에서 확인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 동향을 파악하기에 유용한 매체를 추천한다.

- 보그, 엘르, 코스모폴리탄 등 매거진 : 매거진은 여전히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집합체다. 한 달 먼저 출간되기 때문에 다음 달 동향을 미리 파악하기에 좋다.

- 오픈서베이 트렌드리포트 :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비스'에서 설문조사에 기반한 리포트를 주기적으로 제공한다. 식품부터 금융, 패션 등 거의 전 영역의 소비자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 디에디트 : '사는(live)' 재미가 없으면 사는(buy) 재미라도'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하나의 장르가 된 매거진. 라이프스타일 각 영역에서 전문가들의 관점을 더한 콘텐츠가 별미다.

- 인스타그램 : 라이프스타일 각 분야의 인플루언서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들이 소비하고 추천하는 아이템이 트렌드를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발짝 더

평일에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동향과 흐름을 넓게 파악하는 공부를 한다. 그러다 보면, 더 알고 싶고 궁금한 부분들, 실무에 적용하려면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겠다 싶은 포인트들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때가 되면 깊이 파야하는 순간이다. 내가 아는 선에서, 어떤 분야를 깊이 파는 데 가장 훌륭한 도구는 언제나 책이었다. 그리고 책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 공부한 영역은 완전히 내 것이 되었다.


나는 내가 20년차가 되었을 때도 동일한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길 바란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해 온 이 기본적인 공부가 PR인으로서 기본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고 후배들에게 확신을 갖고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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