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스물두 번째 이야기
며칠 전, 첫째의 친구 엄마이자, 아이 어린이집 4살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친한 동생이 아이 둘을 데리고 농촌유학을 떠났다. 6월 말쯤 "언니, 혹시 학교 E알리미에 농촌유학 공문 올라온 거 봤어요?"하고 얘기할 때만 해도, "언니는 농촌 유학 생각 없어요?" 물어볼 때만 해도 진짜로 떠날 줄은 몰랐다.(아이들만 데리고 먼 농촌으로 가는 것이 쉽지는 않은 선택일 테니) "농촌유학 한번 알아보려고요" 했던 그녀는 어느 날은 "원하는 지역 몇 군데 신청했어요"하는 소식을 알렸고, "거기 답사 한 번 가보려고요"하며 가족들 다 같이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아이 방학하고 얼마 뒤, "거주지 배정이 초등 다자녀 우선인데 우리는 둘째가 학교를 안 다니니 자녀 1명에 해당돼서 원하는 집 구하기가 힘드네. 마지막으로 동네라도 원하는 지역으로 요청해보고 최종 결정 날 것 같아요"하고 알려왔었는데 지난주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가기로 결정한 거 대단하다고,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짧은 인사를 건네고 좀 여유가 생기면 이런저런 이 야도 나누고 연락해야겠다 생각하며 그곳의 생활을 조용히 궁금해하는 중이다.
친한 동생이 농촌유학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학교 공문을 제대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전혀 엄두가 안 났었기에 가까운 사람이 농촌유학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런 게 있나 보다 하고 말았을 텐데 덕분에 농촌유학을 보다 자세히 알아보게 된 것이다. 그저께 라디오를 듣다가 우연히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짧게 소개하는 방송이 들려 반갑고 신기했다. 농촌 유학은 말 그대로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농촌의 학교에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농촌유학, 삶의 힘을 키우다>라는 책에 의하면 2000년대 초반부터 농촌 곳곳에 농촌유학을 돕는 센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단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 도시에 있는 경우도 많아 아이들이 시골 생활을 더 경험하기 힘들어졌고, 과도한 교육열이나 학교 부적응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으로 생태마을, 농촌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농촌 지역의 입장에서도 학생 수가 너무 적어 폐교 위기에 있는 학교를 살릴 수 있고 마을 경제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농촌유학을 통해 작은 학교 살리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책에 제시된 농촌유학 센터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센터에서 돌보는 경우가 많았다. 일정 기간 부모 곁을 떠나 농가나 센터에서 생활하며 그 지역 학교를 다니도록 돕는 농촌유학센터는 지금도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곳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리다면 아이들만 보내는 것이 걱정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면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부대끼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부모들도 많을 것이고. 그런데 이렇게 센터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아이들과 함께 농촌유학을 떠날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지역을 알아보고, 학교를 알아보는 등 수고로움이 많다. (실제로 집을 구하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 학교에서 보낸 공문에 의하면 서울시교육청과 전남교육청이 업무 협약을 맺고 시행하는 농촌유학 프로그램이라( 2021학년도, 즉 올해 1학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유학비도 일부 지원되고 무엇보다 학교, 거주지 등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농촌 생활 중에도 소통 창구가 되어주는 등 장점이 있었다. 학부모가 같이 갈 수 있는 가족 체류형 거주 유형이 있다는 것도 반가웠다.
서울시 교육청에 의하면 1학기 유학 학생들 57명이 2학기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고 2학기에는 94명의 학생들이 새롭게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농촌 지역도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하고, 서울시 교육청뿐 아니라 다른 지역 학생들도 많이 신청하고 이용할 수 있게 확대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원격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대도시에서의 생활에 불안감이나 답답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농촌유학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지고 있다는데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많은 부모들이 갖는 바람일 것이다. 가끔 곤충에 열정인 첫째를 보며 이웃 아주머니들이 묻곤 한다. "어쩜 저렇게 곤충에 관심이 많나요?" 첫째가 3살,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던 여름부터 가을까지 약 두 달 정도 밀양 시댁에서 지낸 적이 있다. 시골에는 놀이터도 잘 없을 텐데, 장난감도 없을 텐데 심심해하면 어쩌지 하던 걱정과 달리 아이는 날마다 할머니와 마실을 나가 강둑을, 시골길을 마음껏 뛰어다니고 한참을 앉아 이것저것 관찰을 했다. 남편에게 식물도감과 곤충도감 책을 부탁해 아이와 보기도 했고, 돌멩이를 주워 강물에 던지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즐거워했다. 시골에서 보낸 두 달간의 시간이 아이에게 정말 귀한 시간이었음을 아이를 보며 느꼈다. 그때부터, 아이가 어릴 때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아이가 4살 때, 관악산 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조금만 가면 산이 있고, 커다란 텃밭이 있고, 계곡이 있고 자연이 있었다.
친한 동생이 농촌유학을 이야기했을 때 "거의 농촌에서 지내는 아이들처럼 자연에서, 바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인데..." 하는 생각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망설였던 큰 이유는 아이들이 아빠와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8살 첫째와 6살 둘째는 아직은(언젠가는 찾지 않는 날들이 올 것이기에) 아빠와 노는 시간을 무지무지 좋아한다. 잠깐 점심 먹으러 오는 남편과 2,30분이라도 놀려고 간절히 조르기도 하고, 둘째는 몇 밤 자면 아빠는 회사를 안 가냐며 수시로 묻곤 한다. 농촌유학은 기본 한 학기를 신청하며 6개월 정도 농촌에서 머물게 된다. 짧지 않은 기간이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 집에서도 놀이에 목마른 아이들과 아빠 없이 지내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빠랑 놀고 싶은데 왜 우리만 온 거야!!" 아이들의 원망 섞인 말이 벌써부터 들리는 듯했다. 어휴, 안돼 안돼, 지금은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이 외에도 6살 둘째가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비록 코로나로 인해 거의 한 달 동안 가지 못했지만) 만족감이 매우 높다는 점, 첫째도 동네 친구들과 매일 바깥놀이를 재미있게 즐긴다는 점 등, 농촌유학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요소는 많았다.
대안학교를 다니든 홈스쿨링을 하든 농촌유학을 택하든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우리 삶을 보다 경쾌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뭔가가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면 그 선택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연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자연보다 사람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좋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있는 곳이라면 최고의 교육 환경이 아닐까. <농촌유학, 삶의 힘을 키우다, p30>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개학을 했고 1, 2학년은 전면 등교를 했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2주 동안 전면 원격 수업을 하게 되었다는 공지를 보았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도 부모들도 쉽지 않은 나날이다. 문득 '학생 수가 적은 농촌 학교, 그리고 사람이 적은 농촌은 대도시보다는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이 적을 텐데' 싶어 농촌유학 네 글자가 또 머릿속에 맴돌았다. 현실적으로 아직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이 계속 남는 것이다.
아이들이 조금은 덜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길 바라는 이유도 있지만, 아이들이 그동안 살았던 곳을 벗어나 농촌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자연을 찾아 가끔씩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일상이 되는 경험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농촌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는 기회를 가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을 배우는 귀한 시간도 가졌으면 한다.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면 학원이나 학업 때문에 농촌유학을 떠나기 망설여지는 경우도 많지만, 오히려 초등 고학년 때 농촌유학의 꿈을 실현하고 싶은 소망도 있다. 지금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은 유아들, 그리고 초등 저학년(2학년) 친구들이다. 지금 아이들은 바깥에서 놀 친구들이 있고 놀 것들이 가득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좀 커서 또래 친구들이 없는 놀이터에서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이도 아닌 내가 그런 장면을 상상하면 쓸쓸해지기도 하고. 그때 농촌유학을 가면 두 아이가 놀고, 경험할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다. 물론 결정은 아이들이 하는 것이겠지만.
도시와 시골에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는 사뭇 다르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다 보면 몸의 감각도 좀 더 예민해진다. 자연을 정서적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체적으로 실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신체에 각인되지 않은 것은 진짜 자신의 경험이라 말하기 어렵다. <농촌유학, 삶의 힘을 키우다, p122>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마음 한 구석에 '농촌유학'을 품고 살기로 했다. 한동안 농촌유학에 대한 경험담을 찾아보며 '농촌 생활에 대한 낭만을 품고 있겠지만 도시보다 훨씬 무료할 수 있어요' '학생 수가 적은 학교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게 아이도 어른도 쉽지 않아요' '어딜 가나 텃세는 있더라고요' 등 단점들도 많이 보았지만 그 단점들을 천천히 이해하고 알아가며 농촌유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농촌유학에 대한 연재를 준비하며 읽은 책 <농촌유학, 삶의 힘을 키우다>와 첫째 친구에게 줄 재미난 책을 그녀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책의 제목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멀리서 열심히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농촌유학은 특히 마음교육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마음교육은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의 사소한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서 단서를 찾아 그 순간, 그 장소에서, 그 사건을 두고 이루어지는 교육이다. 학업이 우선시 되고 정해진 일정만을 따라가는 도시의 학교에서는 그런 단서를 찾기 힘들고, 찾아도 그것을 다룰 여유가 없다... 농촌에서 마음교육이 함께 훈련된다면 농촌유학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농촌유학, 삶의 힘을 키우다, p210>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