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스물 세번째 이야기
예전에 어떤 블로그에서 강사가 직업인 분이 이런 문장을 적어 놓았다.
"실컷 노는 아이들은 계속 놀고, 공부가 몸에 밴 아이들은 계속 공부를 합니다"
그때만 해도 이 글을 보면서 좀 화가 났다. 왜? 실컷 놀아도 공부할 수도 있는데? 왜? 공부가 너무 지겨워서 나중에 오히려 공부를 안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하고. 나는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문장에 반감을 가졌다. 반대로 '공부 습관을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생각하거나 놀기만 하다가 학습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인 부모들은 이 문장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겠구나 싶다. 지금 다시 이 문장을 적다 보니 "그렇지.. 실컷 놀다 보면 계속 놀고 싶을 수도 있고, 마음껏 놀아봤으니 공부해야겠다 마음먹을 수도 있지. 아이마다 다르니까"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육아 동기이자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초등 때 다양한 경험을 해주는 것이 좋다'는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충분히 노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톡을 주고받다가 '실컷 논 아이들은 OOO 하다' 빈칸에 무엇이 채워질까 생각해보게 됐다. '실컷 논 아이들이 공부할 힘을 얻는다'는 어떨까. 어릴 때 마음껏 논다고 해서 나중에 꼭 공부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가까이에서 보았다. 어릴 때부터 그냥 학원을 보내는 건데, (공부를)시키는 건데 하고 후회하며 자책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웠다. 오히려 '실컷 논 아이들이 공부하게 된다'는 믿음이 아이에 대해 더 실망하게 하고 부모가 자책하도록 만든다는 걸 느꼈다. "어릴 때 그렇게 마음껏 뛰어놓게 해 줬는데, 어쩜 계속 공부도 안 하니. 그만큼 놀았으면 공부할 때도 됐는데 네가 그럴 수 있니"하고. 한때 내 마음속에 있던 문장 '실컷 논 아이들이 똑똑하고 공부를 잘한다'를 지웠다. (100퍼센트 지우지는 못하겠음을 고백한다. 실컷 놀다 보면 호기심이 많아지고 궁금한 것이 생기고 앎의 욕구가 더 생긴다는 믿음은 여전하지만, 공부와는 별개임을 인정하기로.)
'제대로 놀아 본 아이들이 끝까지 한다거나, 뭐든 열심히 한다'는 말도 잘 모르겠다. 제대로 안 놀아본 사람이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노는 것만 좋고 다른 건 싫어요 라고 한다면 뭐든 열심히 하기까지 여러 가지 과정과 경험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노는 만큼 열심히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다'라는 어른들의 흔한 잔소리가 오버랩되면서, 그래 열심히 논다고 해서 꼭 다른 것도 열심히 하라는 법은 없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실컷 논 아이들이 성공한다' '실컷 논 아이들이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와 같은 전제도 아이들마다 다를 것이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떠올랐던 문장은 "실컷 논 아이들이 그 순간은 그저 행복하다"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신나게 했던 순간, 자발적인 자기만의 시간이 웃음과 몰입으로 채워졌을 때 아이들은 세상 누구보다 즐거웠을 것이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이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면 하는 것은 부모의 바람일 뿐, 내가 어떻게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00 하면 00 한다'와 같은 공식이 살면서 꼭 들어맞지 않음을,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이의 유년기, 아동기, 청소년기에 아이들이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실컷 노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는 않겠노라 다짐하면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너무 이상적인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더라도 "괜찮아요. 그걸로 충분해요" 용기를 내고 싶다.
실컷 노는 만큼 분명 배우고 공부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성적이 아니라 꾸준히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아이가 열심히 다른 일을 하는데 원동력이 됩니다"라는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처럼 아이들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삶의 방법을 배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 놀이의 시간이 너무 어릴 때부터 제한되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아이들이 충분히 놀 시간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아이들이 좀 크면 놀고 싶어도 놀 수 있는 장소와 시간, 같이 놀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고 하지만 놀이에도 때가 있는데 그때가 요즘은 더 앞당겨지고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밖에 나가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지만 몇 년 뒤에는 어떨까 걱정되는 마음에 지금 더 열심히 놀도록 해주고 싶은가 보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즐기는 자발적인 시간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즐거운지를 안다.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충분하게 놀이 시간을 가진 아이들이 똑똑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하다. 앞으로 점점 놀이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겠지만, 하루 두세 시간씩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이는 일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실컷 논 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된다>라는 책에서는 아이의 현재의 행복이 중요한지, 미래의 행복이 중요한지 잘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 미래도 중요한 문제이기에 마냥 놀게만 두기는 힘들다. 참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삶에는 결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의 행복도 중요하고, 미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기억을 안고 살아갈지를 꼭 염두에 두고 싶다. 실컷 논 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행복하게 뛰어놀았던 순간들이 아이가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