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스물네 번째이야기
가끔 스마트폰이 오래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앨범 메인에 보여줄 때가 있다. 예전 일을 한 번씩 추억해보라는 작은 기계의 배려가 놀랍곤 한데, 오늘은 4년 전, 첫째가 4살, 둘째가 2살 때 동영상을 선물 받았다. 무심코 눌렀다가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씩씩하게"잘 먹어요!(혼자서)" 이야기하며 식탁에 앉아 오물오물 밥을 먹는 아이의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옆에서 뚱한 표정으로 어설프게 숟가락질을 하는 둘째의 모습에서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4년의 시간이 지나 8살이 된 아이는 오늘 방과후 요리수업에서 만두를 만들었다며 집에 오는 길에 자랑을 했다. 김이 가시지 않은 채 아직도 따뜻한 만두를 보고는 군침이 꿀꺽. 저녁에 반찬으로 하면 좋겠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4년 전, 혼자 밥을 잘 먹는다고 뿌듯해하던 아이는 이제 혼자 요리를 조금씩 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그럼에도 집에 오면서 나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아직도 방귀, 똥 이야기를 즐기는 걸 보면서 아직 한참 아이구나 싶었다. "엄마 잠깐만 놀이터에서 놀다 가요"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타고, 여기저기 관찰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침에 여러 번 돌려봤던 동영상이 떠올라 괜히 뭉클해진다. 그렇게 어리기만 했던 네가 언제 이렇게 많이 자랐을까. 울고 웃던 지난 4년의 시간이 오늘따라 참 대단하고 소중하다.
육아를 하다 보면 오늘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실수했던 말들이, 내가 아이에게 잘못했던 순간이 너무 크게 느껴져 절망하고 좌절하는 순간이 수시로 찾아온다. 귀여움이 가득했던 동영상 속 4살의 아이, 그리고 자기가 만든 만두를 먹고는 감탄하며 "엄마도 만두 먹어봐요~"하고 건네는 지금 여덟 살의 그 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기뻤다가, 하루는 좌절했다가, 어떤 날은 용기가 생겼다가 어떠 날은 자책했다가 수없이 반복되는 날을 겪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저녁 늦게까지 놀겠다고, 집에 안 들어오겠다는 아이와 매일 씨름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부탁하는 말을 자꾸만 안 들어줘서 결국엔 화를 내고 아이는 자책하고 슬퍼하고. 입학하기 전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할 것 같아 자꾸만 잔소리가 늘어났고, 학습을 준비하지 않은 채 입학한 아이에게 몇 번 가르쳐주려다가 화를 내며 아이를 울린 적도 있다. 그렇게 7살에서 8살로 넘어오는 시기, 아이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어느 날 남편에게 답답한 마음에 이야기하다가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여보.. 도니가... 나 싫어하고 미워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땐 정말 겁이 났다. 이렇게 수시로 싸우다가 아이랑 관계가 나빠지면 어쩌나, 아이가 엄마를 멀리하면 어떡하지. 그동안 공들였던 탑이 무너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겠지만, 늘 좋을 수만은 없지만, 안 좋은 감정들이 지배적일 때 육아는 더 힘들고 캄캄하다. 그때 마음이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차차 갈등의 순간들은 빈도가 줄어들며 이젠 그때보다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그땐 몰랐지만,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왔던 관계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아이와 나는 조금씩 성장하며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관계를 더 탄탄하게 지탱해주고 있음을 믿게 되었다. "육아는 긴 마라톤"이라는 말이 그동안은 잘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 조금 알겠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동안 넘어졌다가, 서로 일으켜줬다가 천천히 아이와 같이 가야 하는 마라톤이라는 걸. 영영 일어나지 못할 만큼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어디까지 가느냐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그래서 서두르는 것보다 같이 갈 수 있을 때를 기다리는 편이 더 낫다는 걸 말이다.
앞으로도 아이가 자라면서 갈등이 생기고,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 아니 분명 찾아오겠지.. 그때도 이 마음으로 나와 아이가 함께 채웠던 시간들을 먼저 떠올려야겠다. 좌절하고 겁내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아이를 키우며 꼭 손에 쥐기로 했던 두 단어를 기억해야겠다. 기다림과 존중. 이것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비우고 다시 걸을 힘을 내야겠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