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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Sep 29. 2021

똑같은 학교 건물, 획일적인 교육을 바꿀 수 없다면.

소소교육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내가 싫어하는 단어 중에 하나는 관종 혹은 관심병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를 이르는 말' 관종. 보편적인 것과 조금이라도 다를 때, 평범함의 범주에서 약간 벗어난다 싶으면 '관종'이라는 말로 선을 긋는 경향이 불편하다. 무분별하게 쓰이는 관종이라는 말에는 '다름'을 '틀림' 또는 '유별남'으로 보려는 시선이 담겨있다. 조금만 다르거나 좀 개성 있으면 관종이라며 말로 놀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내려앉는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나와 생각이나 방향이 다르면 극단적으로는 혐오에까지 이르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얼마 전 유현준 건축가의 강의 영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지금의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교도소와 학교 건물은 거의 차이가 없다. 담장에 둘러싸인 채 똑같이 생긴 건물, 교실에서 12년 동안 아이들이 그렇게 지낸다. 갇혀서 모이만 먹는 양계장의 닭과 비슷하지 않은가".


아 정말 그렇구나. 생각해보면 많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달라지는데 학교 건물은 수십 년째 똑같은 모습이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고 해도 아주 미미하다. 오히려 예전에는 학교를 벗어나면 골목, 동네, 집 밖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며 아이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요즘은 방과 후 생활도 비슷해지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24시간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거의 변화가 없는) 실내 공간에서 지냅니다" 학교처럼 갇혀 있는 공간에서 보내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다양성을 경험하기 더 힘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와닿았고 또 안타까웠다.

12년 동안 획일적인 건물에서 획일적인 교육을 받고 학교 밖에서도 획일적인 삶을 사는 아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 나와 다름, 다양성을 인정하는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유현준 건축가가 지적하는 것처럼 가치 판단의 기준이 정량화되고 줄 세우고 비교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 아찔해진다. 지금도 사실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가 성공한 기준이 되고 있으니. 앞으로 더하지 않을까..


더 염려되는 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갈등이고 나와 다른 대상에 대한 혐오이다. 무리에 섞이지 않는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공격하고, 좀 다르고 튄다 싶으면 이상하다고 배척하고. 아이들도 그걸 알기에 자신의 개성을 애써 감춘다. 남들과 같지 않는 자신을 비하하고 숨긴다. 자꾸 비교하고 줄 세우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나만의 가치는 점점 상실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커서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보다, 남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쫓아가게 되는 것이다.


비슷비슷한 생김새에 평당 건축 단가 거의 최하 수준의 학교 건축물. 공립학교는 너무 차이가 나면 안 되니까 획기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교육부의 입장이 앞으로도 많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큰 건물을 만들어서 1교시부터 방과 후까지 학생들이 그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게 설계해달라. 그게 안전하고 편안한 학교이다"라는 한 관리자의 요구가 우리나라의 학교 건축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말이 그저 씁쓸하다. 교육도 평등해야 하고, 뭐든 평등하게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바람이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을 지나치게 획일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봐야 한다. 12년 동안 획일적인 공간에서, '성적'이라는 똑같은 목표를 갖고 너나 할 것 없이 학교, 학원, 집 갇힌 공간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정작 졸업하고 나면 "너만의 길을 가라, 꿈을 펼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라고 하는 것은 양계장에서 갇혀 지낸 닭들에게 이제 풀어줄 테니 독수리처럼 훨훨 날아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일침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영상을 보면서 여러 번 울컥했다. 남편에게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자꾸 호소하게 되었다. 요즘의 아이들 이대로 괜찮겠냐고. 조금이라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고.


막막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해본다. 성적을 비롯한 획일적인 잣대로 우리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기. 갇혀 있지 않는 공간에서 아이가 자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기. 나부터 정량화된 가치로 사람과 삶을 판단하지 않는 어른이 되도록 공부하기. 아이들에게 책으로, 지식으로 배우는 시간 외에도, 자연에서, 사람으로부터, 다른 공간에서 배우고 생각하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기. 개인적인 변화들이 모여서 사회가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법을 늘 고민해야겠다.



* 참고 영상: 유현준 건축가 세바시 영상 / 감옥같은 학교 건물을 당장 바꿔야 하는 이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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