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공부를 잘 못해도 긍정적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주면 커서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좋은데,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공부를 못하면 자존감이 확 떨어지게 하니까. 그래서 엄마들이 아이들 공부 어떻게든 시키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건 그런데..."
이런 대화가 오고 갈 때 나는 현실에 맞지 않는 꿈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은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렇게 실천해보자는 나의 글들이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닐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현실은 성적의 좋고 나쁨이 성실함의 잣대가 되고, 공부 못하는 아이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 더 너그러울 때가 많다. 똑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집에서는 "괜찮아, 공부가 다는 아니야.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주더라도 아이들은 10년이 넘는 시간, 공부로 인해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다. 이게 현실이다. 아프고 슬프지만.
2015년에 방영된 EBS 다큐 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에서 대한민국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로 산다는 것은 죄인이다... 그림자이다.. 눈물이다 라는 아이들의 답변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남들에게 성적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단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번 '공부 못하는 아이'로 찍히면 실제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많다. 인격을 무시당하거나, 성적과 아무 상관없는 일에서 오해를 사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공부, 성적이라는 슬픈 잣대를 통해 세상의 차별에 일찍부터 노출되어 버린다" - 책 <공부 못하는 아이> 중에서-
반에서, 학교 전체에서 등수가 매겨지는 한 중위권, 하위권 학생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나뉘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공부 상처를 입게 된다. 성적 앞에서 작아지고 자존감은 계속 깎이고 깎인다. 예전에 10대들 사이에 유행하는 용어 중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듣고 놀랐던 적이 있다. 앞으로 너희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망했다니...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고 또 미안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와 지금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
실제 많은 아이들이 내신 등급, 수능 등급에 맞추어 대학도 직업도 정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등급이 낮으면 아무 희망도 없이 평생 힘들게 살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아이들을 짓누른다. 아직 인생을 꽃피우기도 전에, 너무 '가혹한' 결정론에 젖게 되는 것이다. - 책 <공부 못하는 아이> 중에서-
아이가 공부 때문에 상처 받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로부터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학교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 있지 않도록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평균 또는 그 이상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 수 있을지를. 게다가 요즘은 선행학습을 하는 경우도 많고 대부분의 학습이 어릴 때부터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교육 과정에 맞게 교육을 해도 아이가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의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질까 겁이 난다. 그래서 소신을 갖고 있다가도 어쩔 수 없이 치열한 레이스에 발을 들여놓는 부모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공부를 못해도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 피할 수 없는 서열화에서, 비교와 경쟁에서 열등감으로 멍든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이건 소신 교육을 선택한 부모들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숙제이자 고민일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천재다. 하지만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하면 물고기는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게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는, 사회는 대부분 한 가지 능력, 공부 능력으로 아이들을 판단한다. 10년 넘게 이런 판단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정말 스스로가 바보라고,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살지 모른다. 나부터, 우리 집에서만이라도 그 판단은 틀린 것이라고 계속 알려주는 방법밖에 없다. 네가 갖고 있는 능력과 열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라고. 아이들 안에 들어있는 열정과 가능성을 믿으며, 그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즐겁게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행동하지 않는 것은 자존감 낮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라고 말했다. 가만히 책상 앞에만 앉아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든, 바깥에서든 매일 꾸준히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고등학교 자존감이 낮아지려고 하는 시기에 더욱더. 자꾸만 관성의 법칙처럼 아이들을 내가 생각하는 잣대로 판단하려고 할 때, 공부로 다른 아이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려 할 때 이 말을 기억해야겠다.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하는 건 반칙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